[천자칼럼] 재봉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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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를 만들면서도 아내의 재봉틀은/토담 귀퉁이의 조그만 텃밭을 깁는다/…반지하방의 방 한 칸/…다른 가구들은 다 밀어내고/그 방의 주인처럼 앉아 있는 아내의 재봉틀/양철지붕 위를 뛰어다니는 맨발의 빗소리같은 경쾌함으로/…지상의 집 한 칸을 꿈꾸고 있다.'<김신용 작 '아내의 재봉틀'>
시는 이렇게 끝난다.
'아내의 구름인 재봉틀은/지상의 마지막 옷,수의를 지으면서도/완강한 생활의 가위로 시간의 자투리까지 재단해/가계의 끈질긴 성질을 깁는다.' 재봉틀에 생계를 기댄 게 시인의 아내뿐이랴.이땅 수많은 이들이 가족을 위해 밤낮없이 돌리던 어머니의 재봉틀 소리를 잊지 못한다.
까만 쇠판 위에 황금빛 스핑크스 문장이 새겨진 싱어 재봉틀이 얼마나 큰 재산이었는지도 기억한다.
실제 원로 무용가 강선영씨(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예능보유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그 옛날 딸에게 춤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시댁에서 쫓겨난 어머니가 마지막까지 챙겨나온 재봉틀 덕에 무용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외양이 어떻든 평생 자기 재산은 재봉틀 한 대와 장독대의 장 항아리뿐이라고 생각했다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부인 변중석 여사가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열다섯살 때 얼굴도 못본 정 회장과 결혼한 뒤 평생 치장이라곤 모른채 새벽 3시30분이면 일어나 대가족의 아침식사를 준비했다고 한다.
'부부가 결혼해서 일생을 함께 산다는 것은 결혼이란 형식으로 묶여 자식을 낳고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며 늙어가는 일이다.
존경하고 인정할 점이 없으면 사랑할 수도 없다.
아내가 재봉틀 한 대를 유일한 재산으로 아는 점,부자라는 인식을 하지 않는 점,평생을 변함없이 사는 모습을 나는 존경한다.'
고 정회장이 자서전(이 땅에 태어나서)에서 밝힌 내용이다.
'남편이 사장이면 부인은 회장'이기 일쑤라는 우리 사회에서 실로 가슴을 숙연하게 하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재봉틀의 힘은 이제 예전같지 않다.
그러나 누군가는 지금도 재봉틀에 소박한 꿈을 걸고 있을 것이다.
허튼 대박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시는 이렇게 끝난다.
'아내의 구름인 재봉틀은/지상의 마지막 옷,수의를 지으면서도/완강한 생활의 가위로 시간의 자투리까지 재단해/가계의 끈질긴 성질을 깁는다.' 재봉틀에 생계를 기댄 게 시인의 아내뿐이랴.이땅 수많은 이들이 가족을 위해 밤낮없이 돌리던 어머니의 재봉틀 소리를 잊지 못한다.
까만 쇠판 위에 황금빛 스핑크스 문장이 새겨진 싱어 재봉틀이 얼마나 큰 재산이었는지도 기억한다.
실제 원로 무용가 강선영씨(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예능보유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그 옛날 딸에게 춤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시댁에서 쫓겨난 어머니가 마지막까지 챙겨나온 재봉틀 덕에 무용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외양이 어떻든 평생 자기 재산은 재봉틀 한 대와 장독대의 장 항아리뿐이라고 생각했다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부인 변중석 여사가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열다섯살 때 얼굴도 못본 정 회장과 결혼한 뒤 평생 치장이라곤 모른채 새벽 3시30분이면 일어나 대가족의 아침식사를 준비했다고 한다.
'부부가 결혼해서 일생을 함께 산다는 것은 결혼이란 형식으로 묶여 자식을 낳고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며 늙어가는 일이다.
존경하고 인정할 점이 없으면 사랑할 수도 없다.
아내가 재봉틀 한 대를 유일한 재산으로 아는 점,부자라는 인식을 하지 않는 점,평생을 변함없이 사는 모습을 나는 존경한다.'
고 정회장이 자서전(이 땅에 태어나서)에서 밝힌 내용이다.
'남편이 사장이면 부인은 회장'이기 일쑤라는 우리 사회에서 실로 가슴을 숙연하게 하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재봉틀의 힘은 이제 예전같지 않다.
그러나 누군가는 지금도 재봉틀에 소박한 꿈을 걸고 있을 것이다.
허튼 대박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