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파문으로 야기된 국제 금융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재할인율 인하 카드를 꺼내든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시험대에 올랐다.

일부에서는 "그의 대응이 너무 늦었다"며 "초보자(rookie)로서의 실수"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가 경제학자 출신답게 통계를 확인하려다보니 시장의 요구를 읽는 시기를 놓치고 있다고 꼬집었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케네스 토마스 교수는 "버냉키 의장은 시장에 유동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너무 간과했다"며 "이는 초보 FRB의장으로서의 실수"라고 평가했다.

그는 "버냉키 의장의 이런 실수는 학자(book-smart)와 시장전문가(street-smart)의 차이를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프린스턴대 경제학과장이었던 버냉키 의장은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데 '전망치'를 중시했다.

반면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은 시장에서 전해지는 수십 가지의 신호들로부터 실마리를 잡고 문제를 해결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러다보니 "버냉키 의장은 경제 현상을 숫자로 확인한 뒤 통화정책을 결정하려 했고 자연스럽게 대응이 늦을 수밖에 없다(손성원 LA한미은행장)"는 분석이다.

시장의 환호를 받은 전격적인 재할인율 인하 조치도 학자출신이 아닌 티모시 가이스너 뉴욕 연준 총재와 자넷 옐런 샌프란시스코 연준 총재가 주도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두 사람은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관료를 지내면서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수습했던 사람들로 시장의 흐름을 중시한다.

이들의 주장이 주로 경제학자들로 구성된 FRB 이사회 멤버들을 설득해 재할인율을 전격적으로 인하했다고 한다.

버냉키 의장은 재할인율 인하 결정에 앞서 이들 연준 총재들과 화상회의를 갖고 의견을 들었다.

그렇지만 버냉키 의장의 위기 수습 능력에 지지를 보내는 여론도 상당하다.

아시아월스트리트저널(AWSJ)은 "재할인율 인하가 버냉키의 창의성과 융통성이 발휘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도 지인들의 말을 인용해 "재할인율 인하는 신중하고 지적이며 금융가의 소문이나 억측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버냉키 의장의 일관성을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위험 투자에 나섰다가 손해를 본 투자자들을 구제함으로써 도덕적해이를 유발할 수 있는 기준금리 인하 조치는 취하지 않으면서도 경제성장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재할인율 인하라는 교묘한 방법을 선택했다는 데 이들은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상황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앞으로 전개될 국제금융시장 상황과 그에 따른 FRB의 처방에 따라 버냉키 의장의 능력이 판명될 수밖에 없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