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경제적 지위 향상 '기죽은 사위' 늘어

심하면 이혼까지…대화통해 '상처' 풀어야

[건강한 인생] '처가 스트레스' 고부갈등 못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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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중반의 이모씨.장모가 가구배치뿐 아니라 벽지의 색깔까지 결정할 정도로 간섭이 심하다.

아내는 시댁에 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한다.

이런 와중에 장모가 할머니에게 잘 하라고 충고했다.

할머니가 평소 어머니를 욕보인다는 생각이 강했던 그는 분노가 폭발했다.

고함을 지르고 깡패처럼 유리잔을 부쉈다.

자기 딸은 시댁 어른에게 대하는 태도가 그 모양인데 장모가 무슨 명분으로 자신과 할머니의 관계에 끼어드냐는 것이었다.

불만이 있어도 장모에게 고분고분하던 이씨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혼을 불사하겠다고 나오고 아내도 처가식구를 함부로 대한 남편을 비난하며 엄마에게 무릎꿇고 사죄하지 않으면 같이 살지 않겠다고 맞받아치고 있다.

#40대 후반의 김모씨.부모를 일찍 여의고 공부를 시켜준 형은 외국에 나가 있다.

아내를 위해 집안일도 잘 도와주고 장모와 같이 사는 것을 조금도 불편해하지 않는 둥글둥글한 성격이다.

장서(장모-사위 간)갈등이 일어날 소지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사업에 실패한 뒤 아내가 시작한 의류판매업이 탄탄대로를 달리자 요즘은 부인 뒤치다꺼리를 하며 산다.

흔히 말하는 '셔터맨'이 된 것이다.

시간이 많이 남아 낚시를 자주 다니게 됐고 이제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조차 하지 않는다.

장모는 딸이 고생하는데 사위는 놀러다니고,주변에서 자꾸 사위를 두고 뭐라고 하는 것 같아 늘 마음이 괴롭다.

더욱이 요즘은 사위가 골프까지 배우러 다니고 뭐라고 한마디 하면 듣지도 않고 나가버리는 통에 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다.

부부갈등을 20여년간 전문 상담해온 부부클리닉 후(원장 김병후)에 의뢰된 상담내용이다.

여성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면서 이처럼 처가와 겪는 갈등과 스트레스로 정신과 상담을 받는 이가 늘고 있다.

김 원장은 "10년 전만 해도 고부갈등과 장서갈등의 비율이 9 대 1이었지만 여성들의 지위가 향상된 요즘에는 5 대 5로 비슷해지는 양상"이라고 설명했다.

장모나 장인이 딸의 부부관계에 개입하는 일이 흔해지면서 '처가 스트레스'를 받는 사위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장모가 자녀를 양육하는 가정이 늘면서 이런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고부갈등도 내막을 살펴보면 과거처럼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직접 괴롭히는 경우는 크게 줄고 남편이 시어머니편을 들어 발단이 된 경우가 늘어나는 양상이다.

김 원장은 "시대가 바뀌어 예전에는 그냥 지나칠 수 있고 문젯거리조차 안 되던 곳에서 부부갈등과 장서갈등이 일어나고 있다"며 "장모나 사위 모두 '참지 않는 세대'가 된 게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서로에 대한 인내와 배려가 부족한 것.

그는 "과거 시어머니가 성인이 된 며느리의 삶에 지나치게 간섭해서 고부갈등이 일어났듯 오늘날의 장서갈등은 장모가 사위의 삶에 개입해서 일어나는 것"이라며 "1차적으로 시댁이든 친정이든 독립적 어른이 된 자녀의 삶에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충고했다.

전통적인 가치관과 현시대의 상황인식이 충돌하는 것도 처가 스트레스를 증가시키는 요인.예컨대 김씨 장모는 남자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전통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지만 이제는 능력있는 여자가 벌고 남자가 집안살림을 해도 용납이 되는 세상이다.

또 두 달 전 1000억원대 재산가인 아버지가 데릴 사위를 구한다는 광고에 수백명의 전문직 남성이 몰렸으나 한 결혼정보업체에서 전문직 남성에게 데릴사위가 될수 있느냐고 설문했더니 54%가 부정적 입장을 보인 것도 아직은 우리사회에 보수적 남성성이 강하다는 증거이다.

김 원장은 "남성은 성행위를 할 때 뇌내 성을 관장하는 부위와 공격성을 담당하는 부위가 동시에 활성화하는 반면 여성에게 굴복당하면 남성호르몬이 분출되지 않으면서 어깨가 축처지고 힘이 빠지게 된다"며 "이런 생물학적 남성성이 작동하는 한 처가에 종속되길 거부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대책은 시대 상황 변화에 따른 부부관계의 역할 변화를 직시하여 서로 윈-윈하는 방법을 찾는 것.김 원장은 "부부가 함께 본가와 처가,시댁과 친정을 동등하게 대하도록 하고 대화를 통해 '억울함''상처'를 풀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