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공대가 올 2학기 신임 교수 공채를 실시한 결과 지원자들이 모두 '부적합' 판정을 받아 채용이 미뤄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이공계 기피 현상과 서울대의 경직된 채용 방식이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서울대 공대는 지난 3월 기계항공공학부,전기·컴퓨터공학부,재료공학부,에너지시스템공학부,조선해양공학과 등 5개 학부(과)에서 신임 교수 7명에 대한 채용 공고를 낸 후 40여명이 지원했으나 이 중 단 한 명도 채용되지 못했다고 21일 밝혔다.

이들은 각 학부(과) 인사위원회의 서류 심사 및 심층 인터뷰를 통과하지 못하거나 전체 교수회의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임 교수 채용 실패는 공대 설립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서울대 공대는 내년 3월 신임 교수 공채를 다시 실시할 예정이다.

실력 있는 신규 교수 채용 지원자의 부재는 서울대 자연대도 다르지 않다.

자연대 물리·천문학부는 5년 전 생물물리학(Bio-physics) 분야 신규 교수 공채를 시도했으나 두 차례 연속 교수 채용에 실패해 결국 작년에야 특채 형식으로 해외에 있는 우수 인재를 영입했다.

화학부는 교수 공채에 실패해 현재 채용을 미뤄 둔 상태다.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가장 큰 원인은 이공계 우수 인력이 국내 대학보다 기업체나 해외 대학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기업체나 해외 대학이 제시하는 연봉이 국내 대학을 크게 앞서는 상황에서 국내 대학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대학들의 설명이다.

과학기술부 통계에 따르면 한국에서 직장을 잡은 박사급 인력 중 대학으로 진로를 잡은 사람의 비중은 매년 감소하고 있다.

1997년에는 75%의 박사학위 소지자가 대학으로 갔지만 2005년에는 이 비중이 69%까지 떨어졌다.

반면 기업으로 간 박사급 인력의 비중은 같은 기간 11%에서 18%로 늘어났다.

서울대 내부에서는 공채를 통해 교수를 충원하는 선발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김도연 서울대 공대 학장은 "이번 사태를 통해 공채라는 낡은 방식에서 탈피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며 "해외 대학처럼 스카우트 등을 통해 교수 영입에 많은 투자를 하지 않는 한 지금과 같은 위기에서 벗어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 학장은 "채용되면 능력에 관계 없이 똑같은 대우를 받는 관행을 고치고 우수한 인재를 유치할 수 있는 파격적인 시스템을 서울대도 도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부 전문가들은 우수한 박사급 이공계열 인재의 절대 숫자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 서울대 공대 사태가 빚어진 배경이 됐다고 진단한다.

한 사립대 관계자는 "지난 10여년간 우수 인재들이 이공계보다는 안정적인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의대나 한의대 등으로 진학하거나 이공계에 진학하더라도 중간에 진로를 수정해 의대 등으로 편입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이 때문에 이공계의 인력 풀(pool) 자체가 엷어진 측면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 관계자는 "이른바 '네오 엘리트 코스'로 불리는 이공계열 학부를 졸업해 MBA스쿨(경영전문대학원)이나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등 인문계열 전문대학원으로 진학하는 코스가 일반화되면 이공계열 박사학위 취득자의 숫자는 더 줄어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태훈/송형석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