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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어진 문호…높아진 경쟁력…"토종 세졌다"

제작기간 6년에 300억원을 웃도는 제작비,미국 내 1700개 스크린 확보 등 숱한 화제를 뿌리고 있는 영화 '디 워'.1999년 '용가리'로 실패의 쓴 잔을 마신 후 포기하지 않고 '아메리칸 드림'을 계속해 온 심형래 감독의 '디 워'가 관객 수 700만명을 돌파했다.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1000만 관객 동원도 시간문제다.

영화적 완성도에 대한 논란은 평론가나 관객의 몫이겠지만,국내 영화시장에서 '디 워'의 성공은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다.

'디 워'의 진정한 가치는 이 영화가 할리우드 영화와의 실질적인 경쟁을 시도한 최초의 국산영화라는 데 있다.

그동안 충무로로 대표되는 이른바 주류 영화들은 할리우드영화와 소극적으로 경쟁해 온 것이 사실이다.

국산영화는 장르상 주로 코미디,멜로물인데 시기적으로는 추석이나 겨울방학에 집중적으로 개봉됨으로써 봄,여름에 주로 개봉된 할리우드영화와의 경쟁을 회피해 왔다.

반면,'디 워'는 장르상 블록버스터인 데다 여름방학에 개봉됨으로써 할리우드영화와 본격적인 경쟁을 벌이고 있다.

가을에는 미국시장에 진출할 예정인데 이는 진정한 의미의 영화 수출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영화평론가는 "디 워는 100% 국내 자체 기술로 이만큼의 성과를 거뒀다는 점에서 한국영화사에 큰 획을 긋기 충분하다"며 "아시아의 무명 감독으로서 대형 마켓인 할리우드에 정식으로 와이드 릴리스된다는 남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

문화 산업적 측면에서 높은 해외장벽을 넘겠다는 시도 그 자체만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영화 '디 워'의 사례는 국내 기업들에도 '토종기술 육성'이란 화두를 던진다.

전 세계적으로 기술ㆍ서비스전쟁이 펼쳐지면서 '토종'이 차지하는 위치가 재조명받고 있다.

기술ㆍ서비스주권시대를 맞아 선진국은 총성 없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자신들만의 강점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데 발 벗고 나섰다.

미국에서 가장 우수하고 잘 팔리는 라일락 종류 중에 '미스 킴 라일락'이란 것이 있다.

그러나 본래 이 품종은 우리 것이다.

미국인이 북한산 절벽에서 채취한 뒤 미국에서 재배해 이름까지 바꾼 채 신품종으로 등록해버린 것이다.

미스 킴 라일락은 우리나라에 역수입까지 됐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 사례는 기술ㆍ서비스 종자전쟁 시대의 마지막 희망은 결국 토종임을 잘 말해준다.

그동안 어느 분야에서건 토종은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강했다.

이 과정에서 무조건 '선진국 베끼기' 관행이 만연했고,이는 위험수준에까지 도달했다.

IMF외환위기 이후 10년.그동안 몇몇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지만,경쟁력이 취약한 대부분 업종은 글로벌 경쟁력을 앞세운 외국 기업에 의해 잠식당해왔다.

하지만 외국 기업에 맞서 당당히 어깨를 겨루고 있는 '토종' 기업들도 적지 않다.

'토종'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기업들의 활약상은 언제나 동종업계의 모범이 된다.

올해 초 KMAC(한국능률협회컨설팅)가 발표한 '한국산업의 브랜드 파워 인덱스(K-BPI)' 조사결과 흥미로운 특징이 하나 발견됐다.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토종 브랜드가 많아졌다는 점이다.

가전산업 조사에서 삼성뿐 아니라 LG의 휘센,트롬,싸이킹 등이 강세를 보였고 해외 브랜드는 거의 찾기 힘들었다.

패션 브랜드시장에서도 제일모직의 빈폴,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헤라 등이 강세를 보였다.

토종브랜드인 로케트도 올해 에너자이저를 누르고 1위에 올라섰다.

이들은 IMF위기 시절에도 매출액의 상당 부분을 연구비로 투자,기술개발을 최우선적인 과제로 삼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외국기술과 제품을 이용하면 단기 실적을 올릴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기술 발전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토종기술로 '기술 로열티 시대'의 종언을 앞당기고 있는 각 분야 차세대 리더들의 질주에 갈채를 보내야 하는 이유다.

신재섭 기자 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