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광약품의 지난해 매출은 1375억원으로 국내 제약사 중 16위에 랭크돼 있다.
5위권 내 국내 제약사들의 연매출이 3000억∼5000억원대인데다,매년 10%대 내외의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 사장의 목표는 언뜻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이 사장은 그러나 "요즘 직원들의 눈빛을 보면 뭔가 해보려는 강렬한 의지가 불타고 있다"며 "이런 기세라면 국내 5위권 제약사로의 도약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고 자신한다.
이 사장을 포함한 부광약품 임직원들이 보이는 자신감의 원천은 다름아닌 회사 독자기술로 개발한 B형간염치료제 '레보비르'다.
지난 2월 출시된 레보비르는 쟁쟁한 다국적 제약사 제품과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출시 첫해 15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동아제약의 자이데나가 가지고 있는 국산 신약의 첫해 매출 기록(약 130억원)을 레보비르가 경신하게 될 전망이다.
◆치약 전문 회사에서 신약개발사로 변신
부광약품이 레보비르 개발에 착수한 건 1995년이다.
이 때만 해도 부광약품의 연 매출 규모는 569억원에 불과했다.
부광약품 경영진은 그러나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신약을 개발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레보비르 개발에 뛰어들었다.
당시 기획실장을 맡고 있던 이 사장은 "광고비를 줄여서 연구개발(R&D)에 투자해 신약을 만들겠다는 건 당시 제약업계 분위기상 혁신적인 발상이었다"고 회고했다.
부광약품이 이처럼 신약개발에 과감한 '베팅'을 한 것은 1980년대 이후 겪은 몇 차례의 위기로부터 배운 교훈에서 비롯했다.
80년대만 해도 부광약품은 브랜드 파워가 뛰어난 해외 제품을 라이선스-인 해서 파는 성장전략을 택했다.
'뽀드득'이라는 광고 속 의성어로 유명한 브렌닥스 안티프라그 치약이 부광약품의 대표 제품이었다.
그러나 안티프라그치약의 제조사인 브렌닥스사를 1989년에 인수한 P&G는 곧바로 안티프라그 치약에 대한 판권을 회수해 가버렸다.
연 매출의 30%를 차지하던 대형 품목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린 것이다.
이 사장은 "이 무렵부터 부광약품 오너들과 경영진들은 이제 국내 제약사도 자체 신약을 가져야 생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때 이 사장(당시엔 기획실장)의 눈에 들어온 것이 주중광 미국 조지아대 교수팀과 영치쳉 예일대 교수팀이 개발한 B형간염치료제 후보물질 '클레부딘'(레보비르의 성분명)이었다.
이 사장은 김동연 회장에게 클레부딘을 국산 B형간염 치료제로 개발하자고 건의했고,김 회장은 3일 만에 결단을 내렸다.
◆'레보비르 효과' 가시화
레보비르는 개발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개발 초기 사내 연구진들 사이에서는 레보비르는 불소가 화합물 내부에 들어가 합성과정이 굉장히 까다롭기 때문에 신약으로서의 성공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는 의견이 심심찮게 제기됐다.
또 당초 레보비르를 공동 개발키로 했던 미국의 바이오기업 트라이앵글사가 또 다른 바이오 기업 길리어드사에 인수되는 바람에 공동개발이 무산되기도 했다.
레보비르는 그러나 개발에 착수한 지 11년 만인 지난해 11월 식품의약품안전청의 품목허가를 받아 올해 2월 시장에 본격 출시됐다.
상반기까지의 실적에 대해 부광약품 측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다국적제약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B형간염치료제 '제픽스','헵세라'등이 독점하고 있던 국내 시장에서 출시 6개월이 채 안 돼 약 7%대의 시장 점유율을 확보한 것이다.
우리투자증권은 최근 부광약품에 대한 분석 보고서에서 "레보비르가 올해 150억원의 매출을 올린 데 이어 내년에는 약 3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할 것"이라며 "앞으로 레보비르 효과의 가시화에 주목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 사장 역시 "레보비르는 약 1000억원에 이르는 국내 B형 간염치료제 시장에서 최소 40% 정도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레보비르 효과'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레보비르의 해외판권을 사들인 미국 파마셋사와 일본의 에이자이사가 진행하고 있는 해외 임상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 이르면 2009년부터 로열티 수입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 사장은 "세계 B형간염치료제 시장은 향후 2조원 정도로 커질 것"이라며 "레보비르가 5000억원가량만 판매돼도 부광약품에는 500억원의 로열티 수입이 들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성장엔진 '안트로젠'
제약업계 일각에서는 부광약품은 제네릭 의약품 부문에 대한 영업력이 약하고,회사의 덩치가 작아 향후 급변하는 제약산업의 구조개편 과정에서 확고한 경쟁력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제약산업에서도 갈수록 '규모의 경제'가 중요해 질 것"이라며 "대형제약사와 중소형 제약사 간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장은 그러나 "현재 당뇨병성 신경병증 치료제와 정신분열증 치료제 등 2개 신약을 추가로 개발하고 있다"며 "이들이 향후 부광약품 성장의 또다른 축이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부광약품은 2000년 자회사로 설립한 바이오 벤처 안트로젠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안트로젠은 최근 독자개발한 세포치료제 '아디포셀'로 식약청 허가를 획득한 바 있다.
이 제품은 성인의 지방조직에서 성체줄기세포를 분리한 후,지방세포로 분화시켜 피부조직을 대체하는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치료제다.
부광약품은 아디포셀로 향후 성장 가능성이 높은 성형치료제 시장을 적극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글=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
사진=양윤모 기자 yoonm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