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유통업체에 근무하는 김인식 과장(36)은 대출이자와 카드대금 결제 등의 자동이체일을 매월 1일로 정했다. 월말에 월급을 받기 때문이다. 김 과장은 최근 전업계 카드사로부터 카드요금이 연체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지난달 말 아이들 학원비 105만원을 지불하느라 통장 잔고가 모자랐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거래하는 은행으로부터 받은 주택담보대출 이자는 연체가 되지 않았다. 김 과장은 해당 은행에 문의해 보고서야 은행 자동이체에도 순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행 대출이자와 카드대금이 1순위
일반적으로 같은 날 은행 자동이체를 설정해 두면 가장 먼저 빠지는 돈은 해당 은행의 대출이자와 카드대금이다. 결제계좌인 보통예금 통장을 발급해 준 은행의 대출이자와 카드대금이 우선 자동이체된다는 얘기다. 대출과 카드대금의 연체이자가 다른 공과금의 연체료보다 크기 때문에 고객 편의를 위해서라는 게 은행들의 설명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공과금의 연체료는 부과된 공과금의 10%도 안 돼 평균 연 25%인 대출금의 연체 이자보다 낮다"고 말했다.
거래은행의 이자와 카드대금이 인출된 뒤 전기세나 가스세 같은 각종 공과금이 빠져나간다. 이런 돈은 대부분 은행 영업시간 전이나 영업 개시 직후에 빠져나간다. 고객 입장에서 갚아야 할 돈을 먼저 치른 다음 보험료나 펀드 불입액을 내게 된다. 우승찬 신한은행 IT서비스부 차장은 "적금이나 펀드는 고객이 설정해 놓은 자동이체일보다 늦게 출금되더라도 연체이자가 없기 때문에 고객들의 피해가 적다"고 설명했다.
특이한 사항 중 하나는 보험료가 펀드나 적금보다 먼저 인출된다는 점. 우 차장은 "펀드는 오전 9시 전후로 기준가가 정해진 다음 인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영업시간 전에 자동이체를 하는 보험료보다 늦게 빠진다"고 말했다.
◆인출 순서는 은행별로 천차만별
그렇다고 자동이체 순서가 은행별로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국민은행은 당행의 대출이자와 카드대금을 가장 먼저 빼지만 신한은행은 아파트 관리비를 최우선적으로 인출한다. 그 다음 대출이자와 카드대금을 출금한다.
구용모 신한은행 IT서비스부 차장은 "보통 아파트 관리비에 포함돼 있는 전기세나 수도요금이 연체돼 공급이 중단되면 고객의 생활이 불편해지기 때문에 아파트 관리비를 이체 1순위로 설정해 뒀다"고 말했다. 반면 하나은행은 아파트 관리비를 공과금이나 당행의 적금보다 늦게 처리되도록 하고 있다. 대신 하나은행의 요구불예금 계좌 간 이체를 가장 먼저 처리되도록 했다. 매달 자동이체를 통해 자신의 하나은행 계좌에서 부모님 소유의 하나은행 계좌로 생활비를 부쳐준다면 대출이자가 연체되는 한이 있더라도 부모님 생활비는 꼭 챙겨드릴 수 있는 셈이다. 하나은행은 또 당행의 펀드나 적금보다 타행의 카드대금이나 대출이자를 늦게 인출해 다른 은행과 대조를 이뤘다. 국민은행이나 신한은행은 타행 대출이자를 펀드나 적금뿐 아니라 공과금보다 먼저 출금한다.
유기영 국민은행 차장은 "정해 놓은 자동이체 순서대로 출금을 하지만 고객에게 부득이한 사정이 생기면 출금 순서를 한시적으로 재조정해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