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에 짓눌려 한국 증시가 급등락을 오가며 불안하게 한 주를 마무리한 지난 17일 금요일 밤.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재할인율을 전격 인하,미국과 유럽 증시를 급반등세로 돌려놓았다.

20일 월요일 아침,서울 여의도 메리츠증권 12층은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개장을 앞두고 예상 코스피지수가 급격히 치솟는 등 전주와는 정반대의 분위기가 조성된 탓이었다.

그리고 오전 9시 땡하는 소리와 함께 코스피지수가 3.80% 폭등하자 "앗! 놓쳤다" "그래!" 하는 탄식과 탄성이 오갔다.

책상을 치며 "왜 안 잡혀?" 하는 소리도 들렸다.

선물·옵션 업계의 지존으로 통하는 윤종원 파생상품운용본부장(상무·40)과 그의 사단은 오전 내 피말리는 전쟁을 치렀다.

2시간 넘게 시간이 흐르자 사무 여직원이 딜러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점심 메뉴를 주문받았다.

윤 상무는 "막 끝발 붙는데 자리를 뜨고 싶겠어요.

원하는 사람은 점심시간도 반납하고 모니터와 씨름합니다"고 말했다.

"손실 입고 입맛 없으면 굶는 일도 다반사죠…."

윤종원 파생상품운용본부장.1994년 한양대 졸업 후 서울증권에 입사해 1998년 선물·옵션시장에 발을 디딘 1세대 딜러 출신이다.

1999년에는 144연승(일수익률 플러스)이라는 대기록을 세워 스타로 급부상했다.

무위험 차익거래나 헤지성 거래에 치중하는 딜러가 아닌 스페큘레이터(투기 매매자)가 수익을 지속적으로 낸다는 것은 쉽지 않아 그의 연승 기록은 화제가 됐다.

증권 업계에서는 우리나라 프로야구 초기 4할1푼2리를 친 백인천 선수의 기록과 비견하기도 했다.

윤 상무는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많이 다르죠.저보다 나은 딜러들도 많고요"라며 애써 자신을 낮추면서도 "잘 살아 남았다"며 만족감도 동시에 표명했다.

그가 직접 운용도 하면서 지휘하고 있는 파생상품운용본부는 지난해 247억원의 차익을 냈다.

회사 전체 순이익 중 20%를 차지할 정도다.

2002년 10월 설립 후 56개월 연속 매매 차익 실현이라는 '전설'도 만들었다.

이 기록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서울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의 선물·옵션 운용팀을 업계 최고로 올려 놓은 그의 저력이 메리츠증권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성과 덕에 2004년 서른일곱의 나이에 이사로 승진,메리츠증권 최연소 임원에 올랐다.

그는 장수 비결과 관련,"과거에는 힘의 논리에 따라 장을 만들 수 있었는데 요즘 외국인과 맞서다가는 깨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처럼 살아남은 사람은 꾸준히 버는 사람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분야는 '띠끌 모아 태산'이라며 홈런왕인 베리 본즈보다 안타 제조기인 스즈키 이치로가 더 낫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홈런타자가 삼진도 많이 당하는 것처럼 크게 벌려고 하면 크게 깨지게 마련입니다.

선물옵션시장은 레버리지가 큰 만큼 자칫 손실이 너무 커 다음 타석을 기약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코스피200 선물은 1계약당 50만원으로 본부 내에서는 보통 딜러 1인당 하루 100계약 정도까지 사거나 팔 수 있다.

최근 코스피200 선물 가격으로 100억원 정도 규모다.

선물은 '레버리지 효과'가 있어 증거금으로 15억원(15%)만 있으면 100억원을 주무르는 것과 똑 같은 손익을 낸다.

윤 상무는 "하루 손실 한도인 4000만원을 단 10분 만에 날려 버릴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남은 6시간 정도는 정말 비참한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고 말했다.

윤 상무는 요즘같이 변동성이 심한 장은 처음 본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위험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나름의 몇 가지 원칙을 소개했다.

'3연패하면 하루 쉬어라'가 첫 번째다.

3일 연속 손실을 보면 그 이유를 살펴보고 심기일전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둘째 '이익은 일단 챙겨라'다.

최고 평가이익에서 20~30% 정도 줄어들면 거래 규모를 축소해 이를 지키는 전략을 구사하라는 것이다.

셋째 '정형화된 매매나 기술적 분석을 고집하지 말라'이다.

시장은 변하게 마련이고 시장과 맞서 싸우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자신감을 갖되 자만심은 금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본부 직원들로부터 '저승사자'로 불릴 정도로 승부에 있어서는 냉철함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이곳은 강한자만 살아 남습니다. 어떻게 보면 잔인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얼마 못 갑니다.

딜러의 세상은 과거나 미래는 필요없죠.오직 현재만이 중요합니다."

윤 상무는 "선물옵션은 개인투자자들에겐 마치 복어와 같아요.

복어 다루듯 잘 배우고 신중하게 칼을 써야지 함부로 빼서 하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죠.위험만 잘 요리하면 개인들도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습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본시장 통합법 등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맞는 포부도 밝혔다.

"자통법 발효와 함께 국채선물이나 외환·돈육 선물 등으로까지 시장을 넓혀 나갈 계획입니다.

또 고구려시대 광개토대왕처럼 우리 사단을 이끌고 조만간 열릴 중국 선물시장을 평정할 꿈도 갖고 있습니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


선물옵션=선물거래는 미리 매매 대상이나 가격 수량 매매 시점 등을 정해 계약을 체결하고 미래 특정 시점에서 물건과 대금을 결제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코스피200 선물과 옵션이 대표적이다.

코스피200 지수를 대상으로 미래 특정 시점의 지수를 예상해 사고 파는 것이다.

선물거래에서는 실제 거래금액 중 10~15% 정도의 증거금만 있으면 돼 투자금액에 비해 이익과 손실이 크게 나타나는 레버리지 효과가 있다.

옵션도 만기일에 일정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원금을 다 날릴 수도 있고 특히 옵션을 판 사람은 손실이 무한대가 될 수 있다.

반면 수익도 하루에 수백~수천%까지 가능하다.

그래서 대박과 쪽박이 공존한다고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