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직장인 김모씨. 입고 다니는 양복에 흠집이 나 새로 장만하고 싶지만 연일 이어지는 야근으로 옷을 사러 갈 짬을 낼 수가 없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는다. 몇 달 전 아내를 따라 백화점 매장에 나갔다가 '3차원 가상 피팅 서비스'를 받아 자신의 신체를 그대로 옮겨 놓은 아바타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예전 같으면 백화점 등 매장에 직접 가지 않는 한 자기 체형에 맞는 옷을 고를 방법이 없었지만,이제는 컴퓨터 클릭 만으로도 얼마든지 맞춤 옷을 주문해 배달받을 수 있게 됐다.

컴퓨터를 켜고 백화점의 온라인 매장으로 들어가 로그인을 마친 다음,공인 인증서에 자신의 신체 정보를 사용해도 좋다는 동의만 하면 쇼핑몰에 진열된 옷들을 자신의 아바타에 이것저것 입혀볼 수 있는 것. 신체 정보를 입력했을 당시보다 뱃살과 허벅지,가슴 둘레 등이 달라졌을 경우에도 문제가 없다. 아바타 창에 각 부위의 바뀐 치수를 입력할 수 있는 '업데이트' 기능이 있다.

옷을 사기 위해 매장에 직접 나가지 않아도 온라인을 통해 자신의 '분신'격인 아바타를 활용해 몸에 꼭 맞는 옷을 살 수 있는 날이 가까이 다가왔다. 자신의 신체 정보를 디지털 스캐닝으로 한 번만 입력하면 언제 어디서든 백화점 '피팅룸'에서 옷을 입어보는 것과 똑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도록 한 서비스가 23일 신세계 본점 엘로드(FnC코오롱) 매장에서 시연된 것.



◆단 10초 만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팅 완료'

이날 엘로드 매장에서 선보인 '3차원 가상 피팅 서비스'는 생각보다 빠르고 간편하게 이뤄졌다. 쇼핑객이 할 일은 한대당 2억원짜리 스캐너가 설치돼 있는 피팅룸 안에 들어가 속옷 차림으로 스캐닝 기계 앞에 서는 게 전부다. 빨간 불빛을 단 감지기가 쇼핑객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측정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단 10초. 매장 한켠에 놓여진 모니터 3대엔 스캔 작업이 끝나는 동시에 쇼핑객의 얼굴과 몸매를 빼닮은 아바타가 나타난다.

쇼핑객은 모니터 앞에서 전자태그가 달린 의류를 모니터 인식판에 갖다 대기만 하면 아바타에 이를 직접 입혀볼 수 있다. 엘로드 직원은 "모니터 창을 통해 실루엣을 비롯해 옷이 얼마나 몸에 붙는지,치수는 제대로 맞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FnC코오롱에 기술을 제공한 박창규 건국대 i패션센터장은 "스캔된 정보는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정부기관 사이트에 저장된다"며 '앞으로 온라인 쇼핑몰과도 연계해 직접 매장에 나오지 않고도 아바타를 통해 옷을 입어볼 수 있게끔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i패션센터 측은 다음 달 중 온라인 쇼핑몰(www.i-fashionmall.com)을 열어 본격적인 홍보 활동에 나설 예정이다.


◆FnC코오롱,"상용화 곧 착수"

이날 모델로 참가한 한미선씨(25)는 "속옷을 입고 스캔받는 게 낯설었을 뿐 해보니 여러 옷을 짧은 시간 안에 비교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며 "집이 인천인데 앞으로 백화점에 직접 가지 않고도 온라인상으로 옷을 구입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3차원 가상 피팅 서비스'가 상용화될 경우 아내 옷을 사러간 남편이 아내 스캐닝 정보의 인증서만 있으면 어디에서나 몸에 꼭 맞는 옷을 살 수 있게 된다.

최대 관심사는 언제쯤 이 서비스가 상용화될 수 있느냐다.

현재까진 제조업체 가운데 FnC코오롱이 적극적이고 신세계도 PB(자체 브랜드)나 직수입 브랜드에 일부 서비스를 적용할 예정이다. FnC코오롱은 엘로드 강남점에서 3개월가량 추가 '실험'을 해 본 뒤,본격적인 상용화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회사 관계자는 "스캐너 한 대당 비용이 상당한데다 제품의 디지털 등록 역시 200개 아이템을 디지털화하는데 보통 3개월가량이 걸릴 정도로 시간과 비용이 꽤 걸린다"며 "초기 투자 비용을 어느 정도 감수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유럽보다 앞선 기술

이날 선보인 서비스는 미국,유럽 패션업계에서조차 선보인 적이 없는 앞선 기술이다. 미국만 해도 프라다가 디지털 매장을 운영 중이지만 거울에 옷을 비추면 쇼핑객이 실제 옷을 입었을 때 대략 어떤 실루엣이 될 지를 카메라로 찍어서 보여주는 정도다. 박 센터장은 "올초 마이애미 박람회에서 이 기술을 보여줬는데 GAP 등 50여개 브랜드들이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며 "최종 목표는 아바타 정보를 소비자가 제공하면 이에 맞춰 원하는 디자인을 제작해 주는 맞춤 주문형 양산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동휘/안상미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