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참으로 혼란스럽다.

기상청이 지난달 29일 장마가 끝났다고 공식 발표한 이후에도 지역에 따라 보름 이상 비가 내리고 있다.

쉴 새 없이 비가 내리는데도 푹푹 찌는 무더위는 수그러들기는커녕 폭염특보가 줄을 잇고 있으며,처서(處暑)를 맞아서도 열대야 현상이 좀처럼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여기저기서 갑작스레 폭우가 쏟아지는 이른바 게릴라성 호우와 소낙비가 퍼붓다가 순식간에 햇볕이 쨍쨍 나는 스콜현상까지 빈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예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갖가지 현상들이 뚜렷해지고 있음을 잘 증명해주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들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나라에서도 아열대현상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제주도를 비롯 남부지방은 월 평균기온이 섭씨 10도 이상인 달이 한 해에 8개월을 넘어서는 등 이미 아열대기후의 핵심요건을 갖췄다.

아열대 과일인 '한라봉'의 주산지가 제주도에서 전남 나주 등으로 바뀌고,뉴질랜드 열대 과일인 '골드키위'가 제주도에서 생산되고 있는 것이 그 상징적 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정말로 심각한 것은 급속한 지구온난화 등으로 인해 아열대화를 지연시키거나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기상청의 '전국 아열대기후 예측도'에 따르면 산악지역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이 2071년에는 아열대기후가 되며,평균기온 또한 100년 만에 4도 상승할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과 서귀포 간 기온 차이가 4도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금세기 중에 서울도 아열대기후가 된다는 얘기에 다름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기후변화가 몰고올 파장이다.

농작물 재배와 삼림의 한계선을 북상시키고 어군지도를 바꾸는 등 육상 및 해상의 생태계 전반에 큰 영향을 줄 게 분명하다.

더욱이 찜통 더위에다 집중호우와 슈퍼태풍 등으로 인한 인명 및 재산상 피해 등 재난을 피하기 어렵다.

여름철 무더위로 인해 2030년에 300~400명,2050년엔 600명이 죽을 것이라는 내용을 담은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보고서가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미국이 연간 20억여달러를 들여 기후변화과학프로그램을 운용하고,영국 또한 기후변화영향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러한 연유에서다.

이에 비해 우리는 어떤가.

이러한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과연 제대로 대비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더욱이 기후변화에 적절히 대처할 만한 시스템도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은 게 현실이다.

따라서 우리도 이제는 국가 차원에서 대응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할 때다.

지구온난화 방지대책을 제대로 준수하는 것은 물론 우리의 생활 패턴을 아열대지역 나라들에 맞춰 서둘러 바꾸어 나갈 필요가 있다.

이번 기회에 각급 학교의 여름방학 기간을 대폭 늘리고 국민들의 휴가 패턴도 손질함으로써 에어컨 사용에 따른 전력 소비를 줄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각에서 기존의 장마철 대신 '우기'를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바로 그러한 맥락이다.

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이 지구촌에 엄청난 재앙을 몰고 올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경고를 더이상 흘려들어선 안 된다.

김경식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