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 기 봉 < 시인 >

김춘수 선생님은 2004년 8월4일 기도폐쇄라는 생소한 병으로 쓰러진 뒤 4개월 간 투병하다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사모님 곁으로 가셨습니다.

선생님이 쓰러지기 이틀 전인 8월2일,지하철에서 선생님 전화를 받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대뜸 "류군! 류군! 너무 덥다.

더워서 힘들다.

이런 더위는 처음 본다.

자네는 괜찮은가….그렇지만 어쩌겠나,더워도 참아야지…"라고 하셨죠.

이 글을 쓰는 오늘이 마침 수요일이네요.

선생님! 매주 수요일이면 저와 드라이브를 가셨잖아요.

지금도 수요일이 되면 저는 무의식적으로 선생님 댁 전화번호를 누른답니다.

13년 동안이나 굳어진 습관대로 전화번호를 누르다가 "아 이젠 안 계시지…" 뒤늦게 깨닫곤 합니다.

오는 9월1일 열리는 포도밭 잔치도 이제 10회로 접어들었고,11월29일이면 선생님 가신 지 꼭 3년이 됩니다.

저는 지금 선생님이 문패처럼 남기신 김춘수 포도나무 곁에 있습니다.

선생님 가신 이듬해에 그토록 많이 열리던 선생님의 포도나무가 시름시름 앓더니 단 세 송이밖에 열매를 맺지 않았습니다.

나무도 선생님 가신 일이 못내 서운하며 슬펐나 봅니다.

올해도 가뭄으로 약해진 선생님의 나무가 대수술을 받아 무척 왜소해졌습니다.

저는 이 나무를 어루만지며 포도밭 잔치를 처음 계획했던 1998년 3월을 떠올려 봅니다.

외환(外換) 위기와 우루과이라운드 후유증으로 저를 비롯하여 많은 농업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선생님께서 제게 의미 있는 제안을 하셨지요.

"류군! 내가 예전에 프랑스에 가게 되었는데,우연히 시골 어느 작은 포도마을을 방문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보잘것없이 보이던 그 마을 포도밭에 그림이 하나둘씩 걸리고 문인들이 모여서 시화전도 하고 음악회,연극 공연도 열었어요.

포도만 파는 것이 아니라 각종 문화 상품도 파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또 말씀하셨죠."마침 자네가 시를 쓰면서 포도를 기르니,한번 해 봐요.

농촌 사람들에게도 지금껏 맛보지 못한 고급문화를 보여줘야 하지 않겠어요.

또 도시인들에게도 농촌의 자연과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농촌과 도시가 문화라는 공동체 의식 속에 함께 성장하는 사회가 이상적인 국가예요.

이것이 서로 균형이 맞아요.

질서가 서고….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도와주리다." 쓰임에 따라 사람도 문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10년 전에 제게 일깨워 주셨습니다.

선생님 제안대로 그 해 9월 처음으로 '시인 류기봉 포도밭,시 그림 전'을 열었습니다.

그렇지만 행사 당일에 비가 너무 많이 내려 선생님께서는 참석하지 못하시고 약식(略式)으로 행사를 치렀던 기억이 또렷합니다.

그러고 보니 비와 포도밭의 악연은 또 있습니다.

2003년도에도 홍수 때문에 밭에서 행사를 하지 못하고 인근 학교 교실을 빌려서 열어야만 했습니다.

그 때 선생님께서는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시고 행사 걱정에 무척 마음 상해 하셨지요.

선생님의 애틋한 사랑을 다시 한번 깨달은 순간이었습니다

선생님,올해 포도밭 잔치는 지인(知人)들의 많은 도움을 받아 아름답고 알찬 행사로 준비하였습니다.

시와 소설과 그림,그리고 음악이 함께 하는 종합예술제.선생님을 이 자리에 모십니다.

포도밭 잔치 10주년을 맞아 작지만 선생님을 추모하는 시간을 포도밭에서 갖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선생님께서 저에게 약속하셨잖아요.

시 낭송 하다 흥에 겨우면 덩실덩실 춤을 추신다고요.

잔치는 딱딱해서는 안 되고 편안해야 한다고요.

그 약속 아직 유효한 거죠?

자,선생님 여기 나무의자에 앉으세요.

의자가 불편하시면 잠시 서서 선생님께서 잘 하시는 손 체조를 하셔도 됩니다.

그러다가 선생님 차례가 되면 피아니스트 문효진씨의 즉석연주에 맞춰 선생님의 시 '꽃'을 낭송하시며 잔치의 흥을 돋워주세요.

덩실덩실 더덩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