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노환으로 별세한 김준성 이수그룹 명예회장은 기업가뿐 아니라 공직자,은행장,소설가 등 다양한 이력의 소유자였다.

생전에 김 명예회장의 지인들은 그를 두고 "대통령 빼고는 다 해본 사람"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1920년 대구에서 출생한 고인은 대구고보(현 경북고)를 거쳐 1942년 서울대 상대를 졸업했다.

해방 직후에는 대구에서 섬유업체를 창업,일찌감치 기업가의 길에 들어섰다.

고인은 당시 양말기계 2대로 사업을 일으켜 큰 성공을 거뒀다.

이후 김 명예회장은 기업가에서 금융인으로 변신했다.

고인은 지방에도 은행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1967년 지역 상공인들과 힘을 합쳐 우리나라의 첫 지방은행인 대구은행을 세우고 초대 행장을 지냈다.

이후 제일은행장,외환은행장,한국산업은행 총재,한국은행 총재 등을 거쳐 전국은행연합회 회장까지 역임했다.

고인에게서 관료 생활도 빼놓을 수 없는 경력이다.

고인은 1982년 11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에 취임했다.

부총리 시절 고인은 사회문제가 됐던 20%를 넘는 살인적인 물가 상승률을 한자릿수로 낮추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이 때 전두환 전 대통령과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전 전 대통령은 지난 6월1일 김 명예회장의 88세 미수(米壽)를 맞아 직접 축사를 하기도 했다.

(김 명예회장은 만 나이가 아닌 우리 나이로 올해 88세를 맞아 미수연을 열었다)

김 명예회장은 이후 다시 기업가로 돌아왔다.

1987년 삼성전자 회장을 시작으로 ㈜대우 회장 등 국내 최고 기업에서 최고경영자(CEO)로 전성기를 보냈다.

그리고 1995년부터는 이수화학 회장으로 일하며 이수그룹을 키워냈다.

이수화학을 모체로 화학·건설·정보기술(IT) 등을 아우르는 사업영역을 일궈낸 것.

고인은 자신의 화려한 경력에 걸맞게 삼성그룹 창업자인 고(故) 이병철 회장,현대그룹 창업자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등과 끈끈한 인연을 맺었다.

고인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마지막 골프 라운딩 멤버였으며,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는 사돈지간이다.

김 명예회장이 최근까지 전국경제인연합회 고문겸 원로자문단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것도 기업가로서의 마지막 봉사를 위해서였다.

고인은 문학가이기도 했다.

김 명예회장은 1952년 문예지 '협동'의 문예작품 현상공모에서 처녀작 '닭'을 발표했다.

이후 1955년 김동리 선생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단편소설 '인간 상실'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관료 생활을 마감한 1980년대 후반 이후에도 25년 동안 '먼 시간 속의 실종' 등 세 편의 장편소설과 30여편의 중·단편을 발표하는 등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쳤다.

최근에는 미수를 맞아 그동안 발표해 온 소설 등을 집대성한 '김준성 문학 전집' 출판기념회를 열기도 했다.

고인은 지난 5월28일 생전의 마지막 인터뷰가 된 한국경제신문과의 특별대담에서 "소설가로도 기억되길 바란다"고 말했었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