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Issue] '세계 경제대통령' 역대 FRB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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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미국 제2의 권력자',나아가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2차대전 후 미국과 세계 경제의 역사에는 FRB 의장의 일거수일투족이 녹아들어 있다.
이런 지위가 그냥 주어진 것은 아니다.
통화정책을 놓고 행정부와 밀고당기는 싸움에서 FRB 의장의 판단이 옳았다는 '학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앨런 그린스펀(재임기간 1987~2006년)
고성장ㆍ저물가 '골디락스 경제' 이끌어
2000년 IT거품 붕괴 신속대응 못해
그린스펀은 미국 역사상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과 낮은 물가상승률로 '골디락스'(Goldilocks,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알맞은 상태) 경제를 현실화시킨 인물이다.
낮은 실업률과 다우존스지수 1000에서 1만대로 상승,중앙은행 신뢰 제고 등 공적이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는 '선제적(pre-emptive) 통화정책'을 통해 국제 금융시장의 주요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왔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인플레이션이나 경기침체가 현실화하기 이전부터 금리를 조정해 급격한 경기변동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한 것이다.
1987년 세계 증시가 대폭락을 경험한 '블랙 먼데이' 때 그는 즉시 금리를 인하하고 돈을 풀어 금융경색을 차단했다.
1990년 걸프전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소비위축과 경기둔화 우려가 시장을 휘감았을 때는 물가를 잡기 위한 긴축정책을 먼저 펴는 과감성을 보였다.
이어 유가가 내리자 바로 금리를 인하해 경기를 떠받쳤다.
위험이 다분했지만 어쨌건 성공했다.
2000년 정보기술(IT) 거품 붕괴로 위기에 몰린 그린스펀은 같은 해 5월 연 6.5%에 달했던 금리를 2003년 1%까지 끌어내렸다.
46년 만의 최저 금리였다.
전 세계 중앙은행이 그의 방침에 동조하면서 2002년부터 세계경제는 회복세로 돌아섰다.
그에게도 비판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2000년 증시 거품이 붕괴되고 불황이 3년간 이어지자 책임론이 일었다.
1990년대 말 금융시장의 버블은 경제성장에만 열중하느라 신속하게 위기에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발 위기와 관련해선,2000년부터 2003년까지 이어진 금리인하로 과잉유동성이 전 세계를 누비고 다니게 한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판도 뒤따른다.
◆폴 볼커(1979~1987년)
70년대 美 스태그플레이션 잠재워
그린스펀 전임자였던 볼커는 1970년대 미국의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와 물가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 위기를 조용히 잠재웠다.
그는 금리를 연 19%까지 올리는 초긴축 통화정책을 동원,1970년대 말 두 자릿수에 육박하던 물가상승을 잡는 데 성공했다.
목표금리를 정해놓고 그 안에서 통화정책을 펴던 금리 타기팅(targeting)을 포기하고 통화량 증가를 제어하는 양적 긴축정책을 폈다.
이로써 1981년 무려 13.5%에 달하던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1983년 3.2%로 드라마틱하게 떨어졌다.
그러나 이런 급격한 정책 변화는 1980년대 초반 미국 경기를 침체시키는 부작용을 낳았다.
실업률도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이었다.
1980년 대선에서 로널드 레이건 후보에게 지미 카터 대통령이 패하자 한 참모는 "볼커는 인플레이션의 숨통을 끊었지만 카터 정권의 숨통도 함께 끊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치솟던 물가를 잡을 수 있었기에 그린스펀 시절,미국 경제가 장기성장을 구가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는 것이 중론이다.
◆윌리엄 마틴(1951~1970년)
19년 최장수 의장…닉슨 요구도 거부
윌리엄 마틴 전 의장은 안정적 통화정책으로 장기 인플레이션율을 적정 수준에서 유지시켰다.
최장수(19년) 의장이란 기록도 갖고 있다.
그렇다고 정권의 말을 고분고분 들은 인물은 아니다.
트루먼 대통령부터 존슨,닉슨에 이르기까지 저금리를 통한 금융완화책 주문을 당당하게 거부하고 시장흐름에 맞는 통화정책을 고집했다.
FRB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끝까지 지킨 그를 기리기 위해 워싱턴 청사 중 하나에 '마틴 빌딩'이란 이름을 붙였다.
뒤를 이은 아서 번스 전 의장(1970~1978년)은 FRB의 안정적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리처드 닉슨 대통령 당시 금리인하를 주장해 FRB 의장에 오른 데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이 하야하자 구설에 올랐다.
역대 의장 중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은 윌리엄 밀러(1978~1979년)이다.
재임 17개월간 무려 일곱 차례 금리를 조정했다.
그런데도 물가는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뛰기만 해 잘못된 금융정책의 표본으로 통한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
2차대전 후 미국과 세계 경제의 역사에는 FRB 의장의 일거수일투족이 녹아들어 있다.
이런 지위가 그냥 주어진 것은 아니다.
통화정책을 놓고 행정부와 밀고당기는 싸움에서 FRB 의장의 판단이 옳았다는 '학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앨런 그린스펀(재임기간 1987~2006년)
고성장ㆍ저물가 '골디락스 경제' 이끌어
2000년 IT거품 붕괴 신속대응 못해
그린스펀은 미국 역사상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과 낮은 물가상승률로 '골디락스'(Goldilocks,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알맞은 상태) 경제를 현실화시킨 인물이다.
낮은 실업률과 다우존스지수 1000에서 1만대로 상승,중앙은행 신뢰 제고 등 공적이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는 '선제적(pre-emptive) 통화정책'을 통해 국제 금융시장의 주요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왔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인플레이션이나 경기침체가 현실화하기 이전부터 금리를 조정해 급격한 경기변동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한 것이다.
1987년 세계 증시가 대폭락을 경험한 '블랙 먼데이' 때 그는 즉시 금리를 인하하고 돈을 풀어 금융경색을 차단했다.
1990년 걸프전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소비위축과 경기둔화 우려가 시장을 휘감았을 때는 물가를 잡기 위한 긴축정책을 먼저 펴는 과감성을 보였다.
이어 유가가 내리자 바로 금리를 인하해 경기를 떠받쳤다.
위험이 다분했지만 어쨌건 성공했다.
2000년 정보기술(IT) 거품 붕괴로 위기에 몰린 그린스펀은 같은 해 5월 연 6.5%에 달했던 금리를 2003년 1%까지 끌어내렸다.
46년 만의 최저 금리였다.
전 세계 중앙은행이 그의 방침에 동조하면서 2002년부터 세계경제는 회복세로 돌아섰다.
그에게도 비판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2000년 증시 거품이 붕괴되고 불황이 3년간 이어지자 책임론이 일었다.
1990년대 말 금융시장의 버블은 경제성장에만 열중하느라 신속하게 위기에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발 위기와 관련해선,2000년부터 2003년까지 이어진 금리인하로 과잉유동성이 전 세계를 누비고 다니게 한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판도 뒤따른다.
◆폴 볼커(1979~1987년)
70년대 美 스태그플레이션 잠재워
그린스펀 전임자였던 볼커는 1970년대 미국의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와 물가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 위기를 조용히 잠재웠다.
그는 금리를 연 19%까지 올리는 초긴축 통화정책을 동원,1970년대 말 두 자릿수에 육박하던 물가상승을 잡는 데 성공했다.
목표금리를 정해놓고 그 안에서 통화정책을 펴던 금리 타기팅(targeting)을 포기하고 통화량 증가를 제어하는 양적 긴축정책을 폈다.
이로써 1981년 무려 13.5%에 달하던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1983년 3.2%로 드라마틱하게 떨어졌다.
그러나 이런 급격한 정책 변화는 1980년대 초반 미국 경기를 침체시키는 부작용을 낳았다.
실업률도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이었다.
1980년 대선에서 로널드 레이건 후보에게 지미 카터 대통령이 패하자 한 참모는 "볼커는 인플레이션의 숨통을 끊었지만 카터 정권의 숨통도 함께 끊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치솟던 물가를 잡을 수 있었기에 그린스펀 시절,미국 경제가 장기성장을 구가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는 것이 중론이다.
◆윌리엄 마틴(1951~1970년)
19년 최장수 의장…닉슨 요구도 거부
윌리엄 마틴 전 의장은 안정적 통화정책으로 장기 인플레이션율을 적정 수준에서 유지시켰다.
최장수(19년) 의장이란 기록도 갖고 있다.
그렇다고 정권의 말을 고분고분 들은 인물은 아니다.
트루먼 대통령부터 존슨,닉슨에 이르기까지 저금리를 통한 금융완화책 주문을 당당하게 거부하고 시장흐름에 맞는 통화정책을 고집했다.
FRB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끝까지 지킨 그를 기리기 위해 워싱턴 청사 중 하나에 '마틴 빌딩'이란 이름을 붙였다.
뒤를 이은 아서 번스 전 의장(1970~1978년)은 FRB의 안정적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리처드 닉슨 대통령 당시 금리인하를 주장해 FRB 의장에 오른 데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이 하야하자 구설에 올랐다.
역대 의장 중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은 윌리엄 밀러(1978~1979년)이다.
재임 17개월간 무려 일곱 차례 금리를 조정했다.
그런데도 물가는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뛰기만 해 잘못된 금융정책의 표본으로 통한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