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훈- 화가 오치균의 미학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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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기와 글쓰기는 인간의 '원초적인 생명력'을 풀어내는 아름다운 작업입니다.
소설에서 문체가 미감을 만들어내듯 그림 또한 이탈된 '터치'에서 감동을 뿜어내는 것이죠."(소설가 김훈) 문학과 미술 분야에서 '50대 스타'로 떠오른 소설가 김훈씨(59)와 화가 오치균씨(52)가 다음 달 6~26일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열리는 오씨의 '진달래와 사북의 겨울' 전시회를 앞두고 최근 오씨의 인사동 작업장에서 만났다.
오씨는 강원도 사북의 애수어린 풍경을 붓이 아닌 손가락으로 그리는 작가.
그의 1991년 작품 '북악산 풍경'이 지난달 서울옥션 경매에서 1억4000만원에 팔려 '억대 작가'대열에 합류했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 갇혔던 인조와 신하들의 치욕을 그린 김씨의 역사소설 '남한산성'(학고재)은 출간 4개월 만에 30만부 가까이 팔리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작품으로 만 서로를 알고 있던 두 사람이 처음 만나서 나눈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훈='사북'이란 작품을 들여다 보니 내 머뭇거림의 동반자를 만난 듯싶더군요. 눈이 수북이 쌓인 사북의 검은 풍경과 야산에 갓 핀 진달래꽃 너울이 화면 속에서 생명체의 희망으로 발현해 나가듯 '운동'으로 전개되고 있으니까요. 그 생경한 부조화를 통해 세상에 대해 할 말이 많음을 느꼈어요. 보는 자는 입을 통해 자꾸 묻는데,그림은 대답 대신 다만 자연스럽게 무너지는 아름다운 것들을 붙잡더군요.
▲오치균='남한산성'은 언어의 어둠 속에서 건져 올린 빛과 더불어 묘한 신비감이 엿보여요. 문체가 화려해서 말의 잔치 같지만 어딘가를 향해 전진하고 있고,불필요한 수사가 없어요. 상상력 서사성 유머보다는 비장미가 곳곳에 배어있더군요. 사건보다는 인물들의 심리를 부각시킨 흔적은 아무나 잡아낼 수 없는 앵글이 아닌가 해요.
▲김=과거의 사북에서 바로 오늘을 살고 있는 현대인의 고뇌를 발견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지요. 화면은 대칭이 주는 심미적 안정감이 없고,사물의 형태감이 풀어지면서 주변과 구분되는 사물의 독자성도 희미해요. 제재의 변별력도 약한 것 같구요. 그러나 화면은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있고,색을 통해 설명을 제거하고 본질을 보여주고 싶어하더군요. 아마 그 목적지가 '제도적인 그림'을 꺼리는 작가의 자존심이 아닌가 합니다. 소설이든 그림이든 감흥은 문체나 '터치'라는 형식을 통해 스며나오게 해야 제 맛이죠.
▲오='남한산성'을 통해 역사적 사실보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쓰려했던 게 아닌가 하는 것을 느꼈어요. '남한산성' 도입부에서 김상헌이 겨울강을 건넌 뒤 청나라 군대의 도강을 우려해 죄없는 사공을 벨 때 눈물을 흘리는 것을 표현한 것처럼,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모호하게 돌아갈 필요는 없는 것이지요.
▲김='사북' 역시 사물과 주변과의 관계를 의도적으로 설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했어요. 대상이 충동질해서 그릴 뿐이지,그림에 메시지를 넣지 않는다는 것이죠. 사람들을 향해 그림을 설명하려 들지 않듯 '그림은 스토리텔링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보여준 셈인가요.
▲오='남한산성'과 마찬가지로 '사북'에는 역사의 슬픔과 가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스럽게 무너지는 것들의 아름다움도 있어요. 사북에 응어리진,부조화한 빨강과 파랑이 내 가슴을 때리더군요. 아름다움은 일회성입니다. 녹슨 양철 지붕 위에 눈처럼 쌓인 탄가루나 진달래가 아름답게 느껴질 때 그것을 바로 그려야 합니다. 지겹도록 많은 그림을 그려왔지만 그날 그날의 성취감이 없으면 예술가로서 살 수 없을 겁니다. 오씨는 이번 전시에서 2004년 이후 작품 40여점을 보여주며, 화집(전 3권)도 출간했다. 출품작은 전량 비매품이다.
(02)287-3563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소설에서 문체가 미감을 만들어내듯 그림 또한 이탈된 '터치'에서 감동을 뿜어내는 것이죠."(소설가 김훈) 문학과 미술 분야에서 '50대 스타'로 떠오른 소설가 김훈씨(59)와 화가 오치균씨(52)가 다음 달 6~26일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열리는 오씨의 '진달래와 사북의 겨울' 전시회를 앞두고 최근 오씨의 인사동 작업장에서 만났다.
오씨는 강원도 사북의 애수어린 풍경을 붓이 아닌 손가락으로 그리는 작가.
그의 1991년 작품 '북악산 풍경'이 지난달 서울옥션 경매에서 1억4000만원에 팔려 '억대 작가'대열에 합류했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 갇혔던 인조와 신하들의 치욕을 그린 김씨의 역사소설 '남한산성'(학고재)은 출간 4개월 만에 30만부 가까이 팔리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작품으로 만 서로를 알고 있던 두 사람이 처음 만나서 나눈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훈='사북'이란 작품을 들여다 보니 내 머뭇거림의 동반자를 만난 듯싶더군요. 눈이 수북이 쌓인 사북의 검은 풍경과 야산에 갓 핀 진달래꽃 너울이 화면 속에서 생명체의 희망으로 발현해 나가듯 '운동'으로 전개되고 있으니까요. 그 생경한 부조화를 통해 세상에 대해 할 말이 많음을 느꼈어요. 보는 자는 입을 통해 자꾸 묻는데,그림은 대답 대신 다만 자연스럽게 무너지는 아름다운 것들을 붙잡더군요.
▲오치균='남한산성'은 언어의 어둠 속에서 건져 올린 빛과 더불어 묘한 신비감이 엿보여요. 문체가 화려해서 말의 잔치 같지만 어딘가를 향해 전진하고 있고,불필요한 수사가 없어요. 상상력 서사성 유머보다는 비장미가 곳곳에 배어있더군요. 사건보다는 인물들의 심리를 부각시킨 흔적은 아무나 잡아낼 수 없는 앵글이 아닌가 해요.
▲김=과거의 사북에서 바로 오늘을 살고 있는 현대인의 고뇌를 발견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지요. 화면은 대칭이 주는 심미적 안정감이 없고,사물의 형태감이 풀어지면서 주변과 구분되는 사물의 독자성도 희미해요. 제재의 변별력도 약한 것 같구요. 그러나 화면은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있고,색을 통해 설명을 제거하고 본질을 보여주고 싶어하더군요. 아마 그 목적지가 '제도적인 그림'을 꺼리는 작가의 자존심이 아닌가 합니다. 소설이든 그림이든 감흥은 문체나 '터치'라는 형식을 통해 스며나오게 해야 제 맛이죠.
▲오='남한산성'을 통해 역사적 사실보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쓰려했던 게 아닌가 하는 것을 느꼈어요. '남한산성' 도입부에서 김상헌이 겨울강을 건넌 뒤 청나라 군대의 도강을 우려해 죄없는 사공을 벨 때 눈물을 흘리는 것을 표현한 것처럼,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모호하게 돌아갈 필요는 없는 것이지요.
▲김='사북' 역시 사물과 주변과의 관계를 의도적으로 설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했어요. 대상이 충동질해서 그릴 뿐이지,그림에 메시지를 넣지 않는다는 것이죠. 사람들을 향해 그림을 설명하려 들지 않듯 '그림은 스토리텔링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보여준 셈인가요.
▲오='남한산성'과 마찬가지로 '사북'에는 역사의 슬픔과 가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스럽게 무너지는 것들의 아름다움도 있어요. 사북에 응어리진,부조화한 빨강과 파랑이 내 가슴을 때리더군요. 아름다움은 일회성입니다. 녹슨 양철 지붕 위에 눈처럼 쌓인 탄가루나 진달래가 아름답게 느껴질 때 그것을 바로 그려야 합니다. 지겹도록 많은 그림을 그려왔지만 그날 그날의 성취감이 없으면 예술가로서 살 수 없을 겁니다. 오씨는 이번 전시에서 2004년 이후 작품 40여점을 보여주며, 화집(전 3권)도 출간했다. 출품작은 전량 비매품이다.
(02)287-3563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