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悳煥 < 서강대 교수·과학커뮤니케이션 >

서울대 공대가 생긴 이후 처음으로 교수 채용에 실패했다고 야단이다.

40명의 후보자 중에 서울대가 원하는 수준의 자질을 가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형편이 딱해도 지원자들 모두의 자질을 공개적으로 한꺼번에 싸잡아 비하한 것은 옳은 일이 아니었다.

더 심각한 것은 모든 것이 남의 탓이라는 서울대의 태도다.

서울대의 진단은 이렇다.

우수한 청소년들이 이공계를 외면해왔던 탓에 이제 서울대의 교수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인재가 크게 줄어들었고,그나마 우수한 인재들은 보수는 낮으면서 강의와 업무 부담은 큰 서울대 대신 외국의 대학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애국심만으로는 과학기술계의 유능한 인재를 유치할 수 없다는 주장도 빠트리지 않았다.

결국 서울대 교수에 대한 우리 사회의 열악한 대우가 이번 일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언론도 서울대의 그런 진단에 덩달아 춤을 추고 있다.

서울대의 어느 교수가 미국 대학에서 옮겨왔더니 연봉이 반토막이 났고,강의와 회의는 몇 배로 늘어나더라는 이야기를 대서특필하고 있다.

과거에 자신들은 애국심 때문에 그런 손해를 감수했지만,자기중심적인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그런 자세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평균소득의 격차도 무시한 채 하는 얘기는 실망스러울 뿐이다.

요즘 이공계 대학이 인재난에 허덕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서울대가 주장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르다고 보아야만 한다.

우선 이공계에 우수한 인재가 줄어들었다는 주장은 동의하기 어렵다.

지금 미국의 일류 대학에는 젊은 한국인 교수들이 넘쳐나고 있다.

하버드,코넬,프린스턴,MIT 등이 모두 그렇다.

대부분은 국내에서 대학을 나온 인재들이다.

이공계 기피 때문에 우수한 인재의 수가 줄어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문제는 우수한 우리 인재들이 서울대를 포함해서 국내의 일류 대학을 선택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보수와 강의 부담 때문이라는 주장은 너무 표피적이다.

물론 우수한 인재들이 귀국을 꺼리게 되는 사회적 요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내의 대학을 선택하고 나면 자녀 교육을 위해 기러기 가족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자녀를 키워야 하는 젊은 과학자들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어려움이다.

그러나 정말 심각한 이유는 따로 있다.

서울대를 비롯한 우리의 일류 대학들이 아직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젊은 인재들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대학들이 원하는 인재는 지난 3년 동안 수십 편의 논문을 발표한 실적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런 인재를 확보해야만 마약처럼 중독성이 강한 BK21과 같은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고,현재의 교수들도 그 혜택을 함께 누릴 수 있다.

우리 대학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유능한 인재가 아니라 '실적'이라는 뜻이다.

이번에 서울대 공대에서 원했던 '자질'도 그런 것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방법으로 대학은 당장의 지원을 확보할 수 있겠지만,유능한 신진 과학자들은 설 곳을 잃어버리게 된다.

미국의 일류 대학들도 그런 폐해를 절감하고 신진 과학자들에게 과감한 투자를 시작했다.

미국의 일류 대학에 우리 과학자들이 넘쳐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그런 대학에서 용도가 다해가는 인재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일류 대학들이 인재난에 허덕이게 된 것은 극도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자업자득(自業自得)인 셈이다.

국내의 일류 대학들이 모두 신진 과학자는 외면하고 외국 대학이나 국내의 형편이 어려운 대학에서 어렵게 실적을 쌓은 인재를 찾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다.

대학 간 경쟁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강조하지만 결국 원하는 것은 정부의 지원뿐이다.

대학은 미래의 가능성을 위해 투자하는 곳이다.

지금까지의 실적도 중요하지만,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더 중요하게 평가돼야만 한다.

우리 대학의 짧은 안목과 이기심이 정말 심각한 이공계 위기를 자초하고 있는 셈이다.

이공계 위기가 서울대 교수 채용 실패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