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탈레반 사태가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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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昌模 < 건대 히브리중동학과 교수 >
참으로 반갑고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무장 저항세력에 억류돼온 한국인 인질 19명에 대한 전원 석방 합의가 피랍 41일 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는 청와대의 발표는 그동안 내 가족의 일처럼 마음 졸이며 초조하게 기다려온 우리 국민들에게 안도의 숨을 쉴 수 있도록 해주었다.
절망과 고통의 시간을 견뎌내며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기다려준 가족들과 석방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은 정부 관계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감사를 드린다.
그러나 아직까지 인질들이 분산돼 있어 한꺼번에 석방하는 데는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는 만큼 3~4명씩 순차적으로 석방이 이뤄질 것이라는 탈레반 측의 언급은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대목이다.
더구나 "결과가 좋으니 모든 것이 좋았다" "이제 석방되었으니 모든 일이 끝났다"는 식의 발상은 금물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두 명의 소중한 생명이 희생되었고,이 사태를 둘러싼 구조적인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몇 가지 총체적인 성찰이 요구된다.
먼저,이번 일은 결코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었다.
이번 사태는 세계화 시대 우리 국민이 겪은 초유의 경험이었다.
세계 속에 한국은 어디에 서 있으며 또 한국인은 누구인가에 대한 깊은 자기 성찰을 요구하는 사건이다.
이미 전 세계에 대한민국과 한국인들의 민주화 성취와 경제성장의 신화는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구 곳곳에 한국군이 파병되면서 적어도 세계화 시대에 소외된 지역의 사람들,특히 13억 아랍-이슬람 사람들에게 "제법 먹고 살게 된 한국은 강자의 편에 서서 국익만을 추구하는 나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중동의 현장을 방문할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한국군 파병이 세계화 시대에 미칠 민감한 영향을 정부와 국민은 조금 모르고 있는 듯해 안타깝다.
정부의 외교 다변화 정책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둘째,오늘이 있기까지 언론들 역시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언론의 발표가 엇갈릴 때마다 희비가 엇갈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언론사 역시 그들이 소유한 정보가 단편적이고 엇갈린 탓이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상대의 선전 전술에 놀아난 경우도 없지 않았다.
또한 전문성도 없는 전문가들이 경쟁적으로 초대돼 해당 지역의 특수성 대신 일반론만을 되풀이하는,'누구나 할 수 있는 말'만 되풀이하는 전문가들의 행태 역시 반성해야 한다.
셋째,이번 일로 인류에 대한 책임과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 지구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개인이나 단체에 대한 무분별한 비판은 자제되어야 한다.
국내 교회 성장의 한계를 해외 선교라는 명분으로 극복하려는 기독교계의 제국주의식 선교 전략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하지만 선량한 마음으로 위험을 알면서도 지구촌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삶과 실천을 나누려는 사람들의 소중한 결단을 "그런 위험한 곳에는 왜 갔대?" "희생은 당연해!"라는 식으로 폄하하는 태도에는 무리가 있다.
국경 넘어 고통받는 인류를 품어내지 않는 진보야말로 진정한 진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세계화 시대 우리 정부와 사회는 우리의 기업인들과 젊은이들로 하여금 세계 무대로 진출하도록 적극 돕고 협력해 나가야 할 것이다.
잘못된 파병으로 인해 발생한 한국 기업인과 교민에 대한 위협을 "입국 금지" 혹은 "여행 제한 지역" 등의 방책으로 무마하려는 태도는 오히려 세계화 시대 국민들의 삶의 활동 무대를 제한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정부와 사회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총체적인 성찰과 반성을 통해 지구 시대에 한국인만이 할 수 있는 역할과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평화-봉사 활동의 무대를 오히려 넓혀줘야 한다.
이번 사태로 위축된 국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한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개선시키는 데 노력해야 한다.
이와 비슷한 사태가 다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는 지금의 상황을 심각하게 고려하여 현명한 대책을 마련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참으로 반갑고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무장 저항세력에 억류돼온 한국인 인질 19명에 대한 전원 석방 합의가 피랍 41일 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는 청와대의 발표는 그동안 내 가족의 일처럼 마음 졸이며 초조하게 기다려온 우리 국민들에게 안도의 숨을 쉴 수 있도록 해주었다.
절망과 고통의 시간을 견뎌내며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기다려준 가족들과 석방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은 정부 관계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감사를 드린다.
그러나 아직까지 인질들이 분산돼 있어 한꺼번에 석방하는 데는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는 만큼 3~4명씩 순차적으로 석방이 이뤄질 것이라는 탈레반 측의 언급은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대목이다.
더구나 "결과가 좋으니 모든 것이 좋았다" "이제 석방되었으니 모든 일이 끝났다"는 식의 발상은 금물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두 명의 소중한 생명이 희생되었고,이 사태를 둘러싼 구조적인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몇 가지 총체적인 성찰이 요구된다.
먼저,이번 일은 결코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었다.
이번 사태는 세계화 시대 우리 국민이 겪은 초유의 경험이었다.
세계 속에 한국은 어디에 서 있으며 또 한국인은 누구인가에 대한 깊은 자기 성찰을 요구하는 사건이다.
이미 전 세계에 대한민국과 한국인들의 민주화 성취와 경제성장의 신화는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구 곳곳에 한국군이 파병되면서 적어도 세계화 시대에 소외된 지역의 사람들,특히 13억 아랍-이슬람 사람들에게 "제법 먹고 살게 된 한국은 강자의 편에 서서 국익만을 추구하는 나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중동의 현장을 방문할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한국군 파병이 세계화 시대에 미칠 민감한 영향을 정부와 국민은 조금 모르고 있는 듯해 안타깝다.
정부의 외교 다변화 정책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둘째,오늘이 있기까지 언론들 역시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언론의 발표가 엇갈릴 때마다 희비가 엇갈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언론사 역시 그들이 소유한 정보가 단편적이고 엇갈린 탓이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상대의 선전 전술에 놀아난 경우도 없지 않았다.
또한 전문성도 없는 전문가들이 경쟁적으로 초대돼 해당 지역의 특수성 대신 일반론만을 되풀이하는,'누구나 할 수 있는 말'만 되풀이하는 전문가들의 행태 역시 반성해야 한다.
셋째,이번 일로 인류에 대한 책임과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 지구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개인이나 단체에 대한 무분별한 비판은 자제되어야 한다.
국내 교회 성장의 한계를 해외 선교라는 명분으로 극복하려는 기독교계의 제국주의식 선교 전략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하지만 선량한 마음으로 위험을 알면서도 지구촌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삶과 실천을 나누려는 사람들의 소중한 결단을 "그런 위험한 곳에는 왜 갔대?" "희생은 당연해!"라는 식으로 폄하하는 태도에는 무리가 있다.
국경 넘어 고통받는 인류를 품어내지 않는 진보야말로 진정한 진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세계화 시대 우리 정부와 사회는 우리의 기업인들과 젊은이들로 하여금 세계 무대로 진출하도록 적극 돕고 협력해 나가야 할 것이다.
잘못된 파병으로 인해 발생한 한국 기업인과 교민에 대한 위협을 "입국 금지" 혹은 "여행 제한 지역" 등의 방책으로 무마하려는 태도는 오히려 세계화 시대 국민들의 삶의 활동 무대를 제한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정부와 사회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총체적인 성찰과 반성을 통해 지구 시대에 한국인만이 할 수 있는 역할과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평화-봉사 활동의 무대를 오히려 넓혀줘야 한다.
이번 사태로 위축된 국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한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개선시키는 데 노력해야 한다.
이와 비슷한 사태가 다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는 지금의 상황을 심각하게 고려하여 현명한 대책을 마련하는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