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보험마저 은행에 내준다면 우린 뭘 먹고 삽니까."

대형 손보사의 K상무는 예정대로라면 내년 4월 시행되는 자동차보험의 방카슈랑스에 대해 "벼룩의 간을 빼먹는 것"이라며 흥분했다.

시장 창출효과는 거의 전무한 데다 부실한 계약심사(언더라이팅)로 손해율이 증가하면 가뜩이나 적자 투성이인 자동차보험 사업이 만신창이가 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손보사들은 2006회계연도 자동차보험에서 1조65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4단계 방카슈랑스 확대 시행을 앞두고 보험사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보험업계는 "은행권이 수수료 수익을 더 많이 올리기 위해 밀어내기식으로 보험을 판매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밝혔다.

이같이 무리한 자동차보험 판매는 필연적으로 보험금 지급 급증으로 이어져 보험사의 수익구조를 악화시키게 된다.

보험업계가 4단계 방카슈랑스를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보험사 관계자들은 "은행에 수수료 수입을 더 얹어주기 위해 자산 320조원,세계 7위권인 국내 보험산업 전체를 뒤흔드는 것은 엄청난 사회적 손실"이라고 주장한다.

◆보험사 재무구조 더욱 악화될 듯

자동차보험은 의무보험이다.

대부분의 운전자가 이미 보험에 가입돼 있다.


시장규모도 자동차 등록대수와 연동된다.

때문에 방카슈랑스로 인한 신규 시장 창출 효과가 전무하다.

한정된 시장에서 은행이 숟가락을 하나 더 얹는 셈이다.

설계사 대리점 은행 등 판매채널 간 과당경쟁,그에 따른 사업비 증가로 보험료 인상이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게 보험업계의 지적이다.

소비자 보험사 은행 3자를 놓고 볼 때 플러스 섬(plus sum) 게임이긴커녕 은행만 수혜를 보는 '마이너스 게임'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손보사 관계자들은 "현행 법상으로 은행이 판 보험이 불량물건으로 판단되면 보험사가 인수를 거부할 수 있지만 '을'의 위치에 있는 보험사가 거부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불량물건의 무차별 인수에 따른 손해율 상승은 손보사의 경영수지 악화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손보사의 경영악화는 다시 보험료 인상 요인으로 작용,결국 선의의 보험가입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

보상 서비스의 질도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설계사들은 사고발생시 무상 응대 및 사고현장 출동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은행에서 이 같은 서비스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성주호 경희대 교수는 "방카슈랑스를 통해 보험에 쉽게 가입할 수 있다는 게 곧 고객의 보장 편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은행의 땅 짚고 헤엄치기

종신보험 등 보장성보험은 생보사 매출의 31%,자동차보험은 손보사 매출의 40%를 차지한다.

핵심영업 기반이기도 하지만 판매·유지가 까다로운 상품이기도 하다.

자칫 손해율 관리를 허술히 하면 대규모 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행으로선 '땅 짚고 헤엄치기'다.

보험사처럼 리스크를 따질 필요가 없다.

그저 팔기만 하면 이익을 챙길 수 있다.

만약 부실물건 인수로 보험금 지급이 급증해도 모든 책임은 보험사가 지게 된다.

현재로선 은행의 도덕적 해이를 막을 마땅한 수단이 없다.

전문가들은 종신보험의 은행 판매가 적합한지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설계사들이 종신보험을 팔려면 고객을 통상 7~8회 정도 만나야 한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종신보험은 10년 이상 보험료를 지속적으로 내야하는 상품이어서 수 차례 상담 등을 거쳐 고객의 계약유지 의사를 분명히 확인하고 고객의 재정상황에 적합한 상품을 설계해야 조기해지 등에 따른 고객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은행창구에서 단번에(One-time) 판매되는 방카슈랑스의 특성상 복잡한 판매 프로세스가 필요한 보장성 상품은 적합하지 않고 불완전 판매만 양산할 개연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