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榮鶴 < 산업자원부 기간제조산업본부장 >

최근 들어 우리 경제는 수출과 설비투자가 늘어나고 민간소비도 회복세를 보이면서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원화강세와 고유가,美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화 등 주위 여건과 환경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가 호조를 보이는 것을 보면 "산이 높으면 골이 깊고,골이 깊으면 산이 높다"는 말이 연상된다.

그런데 이렇게 내실이 다져지고 있는 우리 경제가 매년 여름이면 장마처럼 찾아오는 자동차업계 노사분규 때문에 심한 몸살을 앓는다.

생산,내수,수출 등 핵심 경제지표는 물론이고 주가까지 자동차업계의 노사 동향에 좌우될 정도다.

사실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등 노동 3권은 헌법에도 보장된 기본권이고 노사 협상도 전 산업에서 발생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절차인데 왜 유독 자동차산업에서만 이토록 많은 국민적 관심을 받는 것일까.

첫 번째 이유는 미래학자인 피터 드러커가 지적한 것처럼 자동차산업이 '산업중의 산업(industry of industry)'이기 때문이다.

기러기 떼를 이끌며 맨 앞에서 방향을 제시해주는 대장 기러기처럼 자동차산업은 전 산업을 이끌어가는 리더산업이다.

수많은 부양가족을 거느린 대가족의 가장인 셈이다.

자동차는 2만여 부품으로 만들어지는 대표적 조립 산업으로 직접 납품하는 협력부품업체 수만도 1000여개가 되고,철강 전자 유리 고무 플라스틱 등 생산·자재부문과 판매·정비부문,더 나아가 운수 정유 윤활유 주유소 보험 할부금융 등 유통·서비스부문까지 포함하므로 경제 대부분이 자동차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이러다보니 자동차산업이 기침만 해도 우리 경제가 몸살을 앓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최근 자동차산업을 둘러싸고 있는 외부환경 변화가 정말로 급박하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자동차시장은 생산능력이 수요를 200만대 이상 초과하는 공급과잉상태로 업체 간 생존을 위한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경쟁구조도 과거 지역이나 차종별 소수 업체 간 경쟁에서 벗어나 지역·차종 구분 없는 무한 경쟁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

중국 인도 태국 등 새로운 경쟁자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급변하는 시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국의 자동차업계들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등 그야말로 비상이다.

그런데 우리 자동차산업은 어떠한가. 노사간 불신과 대립으로 해마다 파업이 연례행사처럼 반복되고 있고,경직적인 인적자원관리로 경쟁국들에 비해 생산성 향상도 부진하다.

파업에 따른 생산과 매출차질,낮은 생산성 수준과 무관하게 임금인상률이 결정되고,기업 성과에 따라 지급되어야 하는 성과금도 해마다 당연히 받아야 하는 목돈으로 인식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다 보니 경영실적이 좋아질 수 없고,실적이 나쁘다보니 연구개발(R&D),설비구축 등 미래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한 투자에도 소홀할 수밖에 없다.

세계 1위 자동차기업인 일본 도요타는 2005년에 1조9000억엔이라는 사상최대의 기업이익을 올리고도 미래형 자동차 개발 투자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노사합의하에 임금을 동결했는데 말이다.

일본 도요타도 1950년 50일간의 장기파업으로 전체 근로자의 25%가 직장을 잃고 임원이 모두 물러나는 큰 병을 앓은 이후에야 협력적 노사관계가 구축되었다.

이후 석유파동,엔고 위기 등에도 불구하고 단 하루의 파업도 발생하지 않아 오늘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자동차산업의 대부 격인 미국 GM도 10여년 전인 1998년 북미지역 29개 공장 중 27개가 54일간 가동을 중단한 대규모 장기파업으로 커다란 고통을 겪으면서 회사는 대화의 활성화를 꾀하고,노조도 '회사가 없으면 노조도 없다'라는 인식하에 상생을 추진하여 5년간 생산성이 22%나 높아질 수 있었다.

올해는 우리 자동차산업의 노사관계도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작년 '옥쇄 총파업'이라는 초강경 대립을 보였던 쌍용차 노사가 지난 6월 업계 최초로 일체의 분규 없이 노사협상을 마무리하였고,GM대우도 원만하게 종결되었다.

올해로 만 20살이 되는 현대자동차 노사협상도 이제는 성년으로서,한국의 리더산업으로서 성숙한 모습을 보여줄 것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