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한라봉,여수 감귤,영월 사과….고온다습한 아열대성 기후로의 이행이 뚜렷해지면서 전통적인 지역 농업특산물 판도에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수산업계에서는 '지각 변동'에 가까운 변화가 이미 진행되고 있다.

해수면 온도 상승으로 명태와 정어리 등 한류성 어종은 아예 자취를 감춰 거의 모든 물량을 러시아 등으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남해안 굴양식업체들은 해수면의 급속한 상승으로 집단 폐사가 잇따라 수온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서해안의 특산물이던 참조기 갈치 홍어 꽃게 등 연안 어족들도 갈수록 구경하기 힘들어졌다.

◆연안 어족지도가 달라졌다

해양수산부와 국립수산과학원은 최근 '수산자원 회복 프로그램'을 긴급 도입했다.

씨가 말라가는 전통 어종들을 되살리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얘기다.

동해안은 도루묵,남해안은 낙지 대구 참조기,제주도는 오분자기,서해는 꽃게와 홍어가 '회복' 대상이다.

해양부에 따르면 아열대성 기후의 영향으로 지난해 국내 총 어획량이 110만t으로 1990년대에 비해 20% 이상 줄었다.

어류 서식처도 급속히 바뀌고 있다.

서해안의 경우 해수의 표면 온도는 높아지는 반면 심층 수온은 더 낮아지는 아열대형으로의 이행이 뚜렷해져 난류성 어족인 오징어와 멸치가 많이 잡히는 동시에 바다 속 깊은 곳에는 한류 어족인 대구도 늘고 있다.

특히 오징어는 겨울철에도 따뜻해진 날씨 덕에 동해보다 서해에서 산란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오징어는 서해에서 1970년대 연평균 7000t가량 잡히던 것이 최근 들어 연평균 5만t 정도 잡힐 정도로 급증하고 있다.

동해안은 대표 어종이던 명태 정어리 등의 한류성 어종이 자취를 감춰 비상이 걸렸다.

2000년대 들어 연간 17만t씩 잡히던 대표적인 한류성 어종인 명태는 올 상반기(1~6월) 35t밖에 잡히지 않았다.

남해안에서는 대표 어업인 굴 양식업계가 해수 온도 상승으로 고전하고 있다.

연인자 국립수산과학원 어업자원팀장은 "올 7~8월 국내 연안 평균 수온이 25도로 1년 전에 비해 1도가량 올랐다"고 말했다.

양식 굴은 수온이 1도 오를 경우 각종 세균 침투 등으로 신속하게 관리하지 않을 경우 집단 폐사가 불가피하다.

◆농산물 주산지 바뀌나

제주 특산물인 한라봉은 전남 나주·고흥 등 한반도 남해안에 상륙한 데 이어 꾸준히 북상하고 있다.

전남 나주(12.6㏊)와 고흥(9.6㏊) 보성(2.9㏊) 담양(1.6㏊) 등지에서 해마다 한라봉 재배 면적을 10%씩 넓혀가고 있다.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전남 지역 전체 한라봉 생산량은 600여t으로 전년 동기 대비 20%가량 늘었다.

김도남 전남나주농협 과일과장은 "3년 전까지 손에 꼽힐 정도였던 한라봉 재배 농가가 2년 전부터 온난화 현상으로 재배 환경이 뒷받침되면서 현재 11개 시·군에서 총 130여 농가로 늘어났다"며 "제주도 일부 지역만에서 재배됐던 감귤도 완도를 비롯해 여수와 진도 등에서 출하되고 있다"고 말했다.

1980년대 전국 사과 생산량의 20%를 차지하면서 '대구 사과'로 이름을 떨쳤던 경북 영천지방의 사과 생산량 비중은 지난해 3%대로 뚝 떨어졌다.

사과는 생육기(5~10월)엔 평균 기온이 20~30도를 유지해야 하고 일교차는 10도가량이 돼야 가장 좋은 색과 맛을 낸다.

하지만 지난해에 이어 이달 영천지방의 평균 기온이 약 1~3도 높아져 열매가 맺히는 착과율은 떨어지고 강한 자외선 탓에 사과 껍질이 타들어가는 현상까지 벌어졌기 때문.영천지방에서 20년간 사과 농사를 지었다는 최대형씨(60)는 "지난해부터 일교차와 일조량이 고른 강원 양구나 영월로 터전을 옮기는 농민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영월군은 현재 50㏊에 불과한 사과 재배 면적을 2016년까지 200㏊로 늘린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고,양구군도 매년 30%씩 재배 면적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과거 추운 지역으로 알려졌던 두 곳이 이제는 사과 재배의 최적지가 된 것이다.

장성호 기자 ja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