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 경제는 또 한 차례 큰 요동을 겪었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인한 불안이 큰 충격파가 되어 전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든 것이다.

1987년 '블랙 먼데이',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2001년 IT버블 붕괴 등 금융시장의 파국적인 상황을 우리는 이미 수 차례 겪었다.

위기와 급변이 빈발하고 불안정성이 일상화된 것이다.

문제는 기존의 경제학이 이러한 경제 현실을 설명하는 데 너무나도 무력해졌다는 것이다.

훌륭한 경제학자 중 누구도 이들 사태를 예상하지도 못했고,그들의 경제 원리를 가지고도 이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영국의 경제학자 조안 로빈슨이 '경제학의 위기'를 외친 것이 1970년대인데,아직도 경제학은 위기를 벗어나지 못한 채 혼란에 빠져있는 상황이다.

'부의 기원'(에릭 바인하커 지음,안현실·정성철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은 이와 같은 전통 경제학의 무력함을 지적하고 그 대안으로 '복잡성'과 '진화'의 패러다임에 기반한 경제학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전통 경제학의 문제는 그것이 고전역학의 개념틀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의 세계는 스스로 조절하며 마찰 없이 돌아가는 '자동제어장치' 같다.

항상 균형 상태에 있으며 외부 충격에 의해 균형에서 벗어나더라도 상쇄하는 힘의 작용에 의해 다시 균형으로 회귀한다.

저자는 이를 '쿠바의 자동차'라고 표현한다.

미국의 무역봉쇄로 1950년대에 나온 자동차를 아직도 타고 다니는 쿠바인들.그 낡디 낡은 자동차를 고치고 또 고쳐서 타고 다니는 쿠바인들처럼 지금의 경제학자들은 낡은 물리학의 개념틀을 고치고 또 고쳐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불안정한 상태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경제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책은 경제학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고전역학의 패러다임에서 '복잡성'과 '진화'의 패러다임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경제 현실을 불완전한 주체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는 시스템으로 보는 것이다.

이는 합리적이고 균일한 주체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전통 경제학의 기본가정을 허무는 것이다.

불안정성과 급변은 불완전하고 다양한 개인들의 상호작용으로 나타나는 창발현상이다.

이 속에서는 작은 변화가 연쇄반응을 통해 확산되기도 하고 피드백을 거치면서 증폭되기도 한다.

따라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요동치는 불균형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다.

둘째 경제의 지속적인 변화과정을 선별과 보존의 진화메커니즘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경제가 불안정과 요동 속에서도 발전을 지속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진화메커니즘 때문이다.

진화의 핵심 기제는 바로 시장이다.

시장의 압력에 의해 혁신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그 중 적합한 것이 선별되고 이러한 선별압력이 새로운 혁신을 유발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경제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창출해내며 보다 적합한 디자인을 찾아간다.

이 책이 부의 기원을 진화로 보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저자는 기업과 정부에 새로운 메시지를 주고 있다.

기업은 수익 극대화를 추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아니 추구할 수 없다는 말이 맞다.

기업은 생존과 성장을 목적으로 그때 그때 적합한 사업안을 실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략보다 상호작용이 활발한 조직을 만드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고 한다.

정부는 이것 저것 개입해서도 안되지만 시장에만 맡겨서도 안된다고 한다.

시장 자체는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선별환경으로써 의미가 있는 것이다.

시장을 포함한 선별환경을 사회적 목적에 맞게 설계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는 얘기다.

808쪽,2만8000원.

김창욱 삼성경제연구소 복잡계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