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 < 한경硏 원장 >


시장경제는 사람들의 먹고 사는 문제,즉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 누구에게 나누어 주는가의 문제를 시장이라는 분산된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해결하는 경제시스템이다.

그리고 이 분산된 의사결정의 주체인 기업과 근로자 소비자는 제각기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위해 경제활동을 하는 시스템이다.

계획경제는 이에 반해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 누구에게 나누어 주는가의 문제를 정부 관료들이 계산하고 계획해 해결하는 경제시스템이다.

직관적으로 생각해보면 모든 경제주체가 제각각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시스템은 무질서와 비효율이 만연해야 하며,모든 것을 국가가 계획 및 통제하는 시스템은 효율적이고 공평해야 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난 20세기 공산주의 계획경제의 경험은 오히려 그 반대 결과를 초래했다.


시장경제는 지속적으로 경제성장을 이루어 국민들의 물질적 풍요를 보장해 주었지만,계획경제는 소련 동유럽의 마지막 모습과 지금의 북한에서 볼 수 있듯이 철저한 불균형 및 비효율,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다.

무엇이 무계획의 시장경제는 풍요를 누리고,계획경제는 침체를 면치 못하게 만들었을까? 이 역설에 대한 해답은 공산주의 계획경제가 나타나기 훨씬 이전에 이미 아담 스미스에 의해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은유적 표현으로 제시된 바 있다.

스미스가 언급한 대로 모든 경제주체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일하지만,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리듯이 의도하지는 않지만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이득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미스가 은유적으로 표현한 '보이지 않는 손'은 구체적으로 현실 경제에서 어떻게 시장의 성공을 이끌어낼까? 스미스가 예찬한 시장의 성공이란 사람들의 사익추구가 공익을 증진시키는 현상을 말한다.

그렇다면 시장경제에서 무엇이 어떻게 사익추구를 공익과 일치시키는 것일까? 사람들의 이기적 선택이 공익과 일치하도록 만드는 시장기능의 하나가 바로 가격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가격의 신호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학에서는 가격을 시장 참여자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일종의 신호기로 보고 있다.

마치 의사가 환자의 혈압이나 체온으로부터 정보를 얻듯이 시장참여자들이 가격으로부터 시장정보를 얻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배추생산이 흉작이어서 배추 값이 크게 올랐다면,소비자들은 배추가 귀한 물건이 됐다는 정보를 얻게 된다.

그러면 당연히 김치를 아껴 먹고 김치찌개 해먹는 걸 자제하게 될 것이다.

이런 행동은 물론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이롭기 때문이겠지만,결과적으로 배추절약운동을 실천한 셈이 된다.

정부에서 배추를 아껴 먹자고 캠페인을 하거나 규제하지 않아도 소비자들은 스스로 배추 소비를 줄이고 김치를 아껴 먹게 된다.

사익추구가 공익과 일치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높아진 배추가격은 공급자에게도 신호를 보낸다.

배추가 다른 작물보다 더 수익성이 높은 작물이 됐다는 정보를 준다.

당연히 농민들은 정부에서 배추를 더 심으라고 하지 않아도 배추를 더 심게 될 것이다.

물론 이것도 농민 스스로 자신의 이익을 위한 선택이지만,결과적으로 배추 증산이라는 국민경제에 도움이 되는 선택을 한 것이다.

여기서도 사익추구가 공익과 일치하게 된다.

공급자나 소비자나 모두 정부의 간섭과 계획 없이도 가격의 변화에 반응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공익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일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부가 가격을 인위적으로 조작하거나 규제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앞의 예에서 정부가 배추 흉작에도 불구하고 배추 값을 오르지 못하게 묶어 놓았다면 결국 배추 품귀현상을 초래할 것이고 정부는 배추배급제를 실시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계획경제의 마지막 모습이 물량부족과 줄서기였던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요즘 우리 경제에 공익의 명분으로 가격을 규제하거나 여론의 압력으로 가격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가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가격규제는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어 공익을 증진하기보다 공익을 저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가격은 시장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신호등일 뿐이다.

신호등을 바꾼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신호가 나오게 된 근본 원인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