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외국인 치과의사 선생님이다!"

"어디서 왔어요. 이름이 뭐죠.한국말 어디서 배웠어요."

지난 31일 오후 서울 혜화동 서울대학 치과병원을 찾은 7살 승은이는 진찰 의자에 앉자마자 질문을 쏟아냈다.

파란 눈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국 뉴욕 출신 치과의사인 존 샤긴얀씨(37)가 무척이나 신기하다는 표정이었다.

샤긴얀은 승은이의 천진난만한 질문 공세를 한 마디로 정리한다.

"아~하세요." 그의 유창한 한국말 솜씨에 놀란 승은이는 아무말 없이 입을 쩍 벌렸다.

"미국인 의사가 신기한가 봐요.

저만 보면 환자들이 질문 공세를 퍼붓죠." 충치 치료를 마친 샤긴얀은 질문이 많은 환자도 '아~하세요' 한 마디에 뚝 그친다며 웃음을 지었다.

서울대 치의학전문대학원 3학년인 샤긴얀은 요즘 학교 병원에서 환자 진료와 수업을 병행하고 있다.

그가 처음 한국에 온 것은 12년 전인 1995년.미국에 본사를 둔 중소 무역업체 한국지사 근무를 위해서였다.

결혼 직후 산부인과 의사인 아내와 함께 한국을 찾은 그는 "이렇게 한국에 눌러앉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정'이 많은 샤긴얀에게 한국 문화는 딱 들어맞았다.

"미국 사람들은 개인적입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남을 많이 배려해주는 것 같아요." 단체생활을 좋아한다는 그는 한국 사람들은 가까워지면 마음 속까지 진짜 친해지는 게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한국에 온 지 4년째 되던 1999년 그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

일하던 회사가 부도위기에 몰렸기 때문이었다.

샤긴얀은 미국으로 돌아갈지,한국에 남을지를 두고 고민했다.

"다시 돌아가느니 차라리 한국에 남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문득 '치과의사가 되면 어떨까'란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그는 외국인 친구들이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 치과 진료를 받는 것을 생각해 냈다.

환자들이 치료에 대해 의사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어하지만 한국 의사들은 언어가 통하지 않아 불만이 많다는 설명이었다.

예를 들어 외국인들은 보통 엑스레이 사진 찍는 걸 싫어하지만,한국 의사들은 아무 설명없이 엑스레이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는 지적이었다.

일하던 회사가 부도나던 해,그는 서울대 치과대학에 외국인 특례전형으로 입학했다.

운 좋게 입학은 했으나 의사가 되는 길이 쉽진 않았다.

예과 2년,본과 4년에다 인턴 1년과 레지던트 3년까지 무려 10년을 공부해야 비로소 전문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본과로 올라온 뒤 입시를 앞둔 고3처럼 공부만 했어요." 그는 서울대는 외국인이라고 봐주는 것이 전혀 없다면서 여기까지 버틴 것도 신기할 정도라고 혀를 내둘렀다.

샤긴얀은 언어 문제로 가장 고생을 했다.

일상생활을 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로 한국어에 능통했지만,하루에 수십개의 새로운 전문용어를 통째로 암기하기란 녹록지 않았다.

"한국에는 한국어를 전문적으로 가르쳐 주는 곳이 너무 없어요.

한국어 어학당들은 아주 기본적인 것만 알려줍니다.

제가 필요했던 것은 보다 깊이 있는 한국어 공부였어요." 그는 한국어 교육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샤긴얀은 5년간의 독학 끝에 한국어를 익혔다.

그는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제대로 살려면 한글을 꼭 배워야 한다고 충고했다.

한글을 모르면 한국 문화를 알 수 없고,한국 문화를 이해 못하면 한국에서 사는 재미가 없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학교에서 '스마일맨'으로 통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항상 웃고 다녀요. 한국말도 매우 잘하고요. 마치 한국인 같다니까요." 친구인 성여준씨는 샤긴얀이 특히 여학생들로부터 인기가 많다고 짓궂게 말했다.

샤긴얀의 장래 목표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전문 병원을 만드는 것이다.

"글로벌화 영향으로 한국 내 외국인 수는 더욱 늘어날 겁니다.

외국인들이 치과 진료를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요즘 샤긴얀은 대입 수험생처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2009년 1월에 의사자격시험인 국가고시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졸업 후 '교정과' 전문의를 택할 계획이다.

그는 "교정 치료는 마치 체스를 두는 것과 같다"며 "치료 결과를 미리 예측해 진료 계획을 짜는 점이 흥미진지하다"고 설명했다.

환자를 아프지 않게 치료하는 법을 의사들이 철저히 익혀야 한다는 게 샤긴얀의 지론이다.

그는 환자들이 치료를 받은 후 '하나도 안 아팠다'고 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환자들에겐 한없이 친절하지만,가정에선 엄한 '호랑이' 아버지다.

현재 9살난 아들과 3살짜리 딸아이를 두고 있다.

그는 요양차 미국에 있는 아내 대신 아들 윌리엄에게 스파르타식 교육을 시키고 있다.

어린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아침 6시면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수업을 마친 후에도 혼자 오후를 보낸다.

착한 아들을 뒀다고 칭찬하자 "아이는 독립적으로 키워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아침에 내준 아들의 숙제 검사를 하러 가야 한다"며 서둘러 자리를 떴다.

성선화 기자 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