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인터뷰] 이태진 서울대 인문대학장 "중국서 비즈니스 저녁식사때 漢詩 한편 읊지 못하면 사업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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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회자되는 시기에 역설적으로 재계에 의미있는 인문학 바람이 불고 있다.
'아드 폰테스(Ad Fontes·'원천으로'라는 뜻의 라틴어) 프로그램'이란 이름으로 최근 서울대에서 마련한 '인문학 최고지도자 과정(AFP)'에 당초 계획 인원의 두 배나 되는 지원자가 몰렸다.
기업 경영자들은 물론 정계와 관계의 지도자들이 앞다퉈 수강을 신청하고 나선 것. 당초 강사로 초빙된 이계안 민주신당 의원과 조동성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프로그램 내용을 보고 아예 수강생으로도 등록했을 정도다.
경영학에서 배우는 기본 지식만으로는 기업 경영에 한계를 느낀 지도자들이 새로운 길을 찾는 돌파구를 창조와 감성의 '원천'인 인문학에 묻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을 책임지고 있는 이태진 서울대 인문대학장(64)으로부터 '인문학과 경영의 만남'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경영자들에게 왜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한가요.
"1960∼70년대 경제개발 시대에는 과학기술과 경제 경영 등 당장 먹고 사는 게 중요했습니다. 이들 학문이 각광받았던 이유지요.
그러나 경제 경영학 같은 실용적인 학문은 선진 경제를 만드는 필요조건은 될 수 있어도 충분조건까지는 안 됩니다. 창조적인 제품이 경영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즘에는 인류가 걸어온 경험을 설명해주는 인문학이 부각될 수밖에 없지요.
지금처럼 웰빙 열풍이 불고,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지요.
이제 경영학은 기본이고 여기에 인문학적 지식을 더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인문학이 경영인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습니까.
"중국에서 비즈니스를 할 때 중국 지도자들과의 저녁자리에서 한시(漢詩) 한 편 읊지 못하면 제대로 된 사업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최고지도자 과정에 '현대 중국 리더가 읽는 중국고전'이란 강좌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기업들의 해외 교류가 점점 많아지는데 해당 지역의 문화나 역사를 알면 협상 분위기도 한결 부드러워지고 훨씬 좋은 성과를 올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경영인들도 그런 생각에 동의하는지요.
"지금 같은 경영학 교육을 통해 양성된 경영자가 선진국 경영자와 경쟁할 경우 필패할 수밖에 없다는 걱정이 경영학계 내부에서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선진국의 경영학 과정은 인문학 등 기초학문을 마친 학생들을 대상으로 가르치고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한 탓입니다.
서울대 경영대 교수들 사이에서도 학부 과정부터 인문학 복수 전공을 도입하고 싶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경영 현장에 있는 기업인들을 만나봐도 그런 욕구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인문학이 경영학을 대신할 수는 없겠지만 보완적인 관계로 인문학을 활용하면 훌륭한 경영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인문학은 이제 경영인들의 선택과목이 아니라 필수과목이란 얘기네요.
"그렇습니다.
특히 요즘은 정보화의 빠른 진행으로 지식의 대중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시대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정보를 통제하면서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인(국가)들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대신 세상의 흐름을 읽는 경영인(기업)들이 사회의 주도권을 잡는다는 얘기지요.
결국 앞으로는 시대 변화를 빠르게 파악하는 경영인들만 살아남게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의 본질이나 역사 문화 등 인문학을 잘 아는 게 핵심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지요."
-기존 경영대학원에 인문학 강의를 추가해도 되지 않을까요.
"지금도 그렇게는 하고 있습니다.
경영대 최고경영자 과정에서 인문학 전문가들을 초빙하는데 전체 커리큘럼의 10%도 안 되는 수준입니다.
양념에 불과할 뿐이죠. 인문학 쪽에서 해줄 수 있는 얘기의 반의 반도 못해줍니다. 그래도 그 과정을 들은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하면 인문학 강의가 가장 도움이 됐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우리 프로그램은 그래서 인문학이 현대사회와 관련된 분야를 한 학기 분량으로 짜서 제시할 생각입니다. 경영인들이 인간의 본질에 관한 얘기를 듣고 가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많이 쏟아질 수 있을 겁니다."
-최고지도자 과정이 자칫 단순한 지적 허영심을 채워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는데요.
"기업인들에게 구체적인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커리큘럼을 만들었습니다.
기업인들이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주제로 알기 쉽게 강의를 할 것입니다. 경영대와 법대 공대 등에서 진행하는 최고경영자 과정들도 철저히 분석하는 등 나름대로 상당한 준비를 했습니다. 독서 리스트도 제공해 경영인들이 인문학으로 가는 게이트를 만들어 주려고 합니다."
-최고경영자들 말고도 인문학이 필요한 계층이 많을 텐데요.
"과정을 만드는 자체가 이번이 처음이어서 일단 성공한 다음 생각해봐야 하겠지만 프로그램을 점차 확대할 계획은 갖고 있습니다.
이미 일반 시민을 상대로 하는 인문학 강좌로 10월부터 '서울대 교수들과 함께하는 고전읽기' 과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 강좌당 20시간씩 10개 정도 강좌를 만들 예정입니다."
-외국 대학에서도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과정이 있는지요.
"미국 하버드대학에 비슷한 과정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와 서양은 역사나 문화 등 인문학의 근본부터 차이가 나기 때문에 그런 과정을 벤치마킹하기는 어렵습니다.
예컨대 서양사람들은 '존재론'에 바탕을 둔 개인주의가 사고의 근간인 데 반해 동양은 논어 맹자부터 불교의 인연론까지 '관계론'이 정신세계의 중심입니다. 어느 서양 기업인이 우리나라 상가집에 들렀다가 많은 사람들이 모여 '네트워킹'하는 것을 보고는 크게 놀랐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의 이런 '관계'가 자신들은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큰 비즈니스 자산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죠.인문학 최고지도자 과정에선 이 같은 독특한 우리 문화의 강점에 대해서도 많은 소개를 할 계획입니다.
'전통'을 '자산'으로 만드는 일이라고 할까요.
이런 과정이 잘 발전하면 위기라고까지 일컬어지는 인문학이 우리 사회에서 저변을 확대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정리=김동욱 기자/ 사진=김정욱 기자 kimdw@hankyung.com
'아드 폰테스(Ad Fontes·'원천으로'라는 뜻의 라틴어) 프로그램'이란 이름으로 최근 서울대에서 마련한 '인문학 최고지도자 과정(AFP)'에 당초 계획 인원의 두 배나 되는 지원자가 몰렸다.
기업 경영자들은 물론 정계와 관계의 지도자들이 앞다퉈 수강을 신청하고 나선 것. 당초 강사로 초빙된 이계안 민주신당 의원과 조동성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프로그램 내용을 보고 아예 수강생으로도 등록했을 정도다.
경영학에서 배우는 기본 지식만으로는 기업 경영에 한계를 느낀 지도자들이 새로운 길을 찾는 돌파구를 창조와 감성의 '원천'인 인문학에 묻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을 책임지고 있는 이태진 서울대 인문대학장(64)으로부터 '인문학과 경영의 만남'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경영자들에게 왜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한가요.
"1960∼70년대 경제개발 시대에는 과학기술과 경제 경영 등 당장 먹고 사는 게 중요했습니다. 이들 학문이 각광받았던 이유지요.
그러나 경제 경영학 같은 실용적인 학문은 선진 경제를 만드는 필요조건은 될 수 있어도 충분조건까지는 안 됩니다. 창조적인 제품이 경영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즘에는 인류가 걸어온 경험을 설명해주는 인문학이 부각될 수밖에 없지요.
지금처럼 웰빙 열풍이 불고,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지요.
이제 경영학은 기본이고 여기에 인문학적 지식을 더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인문학이 경영인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습니까.
"중국에서 비즈니스를 할 때 중국 지도자들과의 저녁자리에서 한시(漢詩) 한 편 읊지 못하면 제대로 된 사업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최고지도자 과정에 '현대 중국 리더가 읽는 중국고전'이란 강좌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기업들의 해외 교류가 점점 많아지는데 해당 지역의 문화나 역사를 알면 협상 분위기도 한결 부드러워지고 훨씬 좋은 성과를 올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경영인들도 그런 생각에 동의하는지요.
"지금 같은 경영학 교육을 통해 양성된 경영자가 선진국 경영자와 경쟁할 경우 필패할 수밖에 없다는 걱정이 경영학계 내부에서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선진국의 경영학 과정은 인문학 등 기초학문을 마친 학생들을 대상으로 가르치고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한 탓입니다.
서울대 경영대 교수들 사이에서도 학부 과정부터 인문학 복수 전공을 도입하고 싶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경영 현장에 있는 기업인들을 만나봐도 그런 욕구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인문학이 경영학을 대신할 수는 없겠지만 보완적인 관계로 인문학을 활용하면 훌륭한 경영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인문학은 이제 경영인들의 선택과목이 아니라 필수과목이란 얘기네요.
"그렇습니다.
특히 요즘은 정보화의 빠른 진행으로 지식의 대중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시대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정보를 통제하면서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인(국가)들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대신 세상의 흐름을 읽는 경영인(기업)들이 사회의 주도권을 잡는다는 얘기지요.
결국 앞으로는 시대 변화를 빠르게 파악하는 경영인들만 살아남게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의 본질이나 역사 문화 등 인문학을 잘 아는 게 핵심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지요."
-기존 경영대학원에 인문학 강의를 추가해도 되지 않을까요.
"지금도 그렇게는 하고 있습니다.
경영대 최고경영자 과정에서 인문학 전문가들을 초빙하는데 전체 커리큘럼의 10%도 안 되는 수준입니다.
양념에 불과할 뿐이죠. 인문학 쪽에서 해줄 수 있는 얘기의 반의 반도 못해줍니다. 그래도 그 과정을 들은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하면 인문학 강의가 가장 도움이 됐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우리 프로그램은 그래서 인문학이 현대사회와 관련된 분야를 한 학기 분량으로 짜서 제시할 생각입니다. 경영인들이 인간의 본질에 관한 얘기를 듣고 가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많이 쏟아질 수 있을 겁니다."
-최고지도자 과정이 자칫 단순한 지적 허영심을 채워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는데요.
"기업인들에게 구체적인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커리큘럼을 만들었습니다.
기업인들이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주제로 알기 쉽게 강의를 할 것입니다. 경영대와 법대 공대 등에서 진행하는 최고경영자 과정들도 철저히 분석하는 등 나름대로 상당한 준비를 했습니다. 독서 리스트도 제공해 경영인들이 인문학으로 가는 게이트를 만들어 주려고 합니다."
-최고경영자들 말고도 인문학이 필요한 계층이 많을 텐데요.
"과정을 만드는 자체가 이번이 처음이어서 일단 성공한 다음 생각해봐야 하겠지만 프로그램을 점차 확대할 계획은 갖고 있습니다.
이미 일반 시민을 상대로 하는 인문학 강좌로 10월부터 '서울대 교수들과 함께하는 고전읽기' 과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 강좌당 20시간씩 10개 정도 강좌를 만들 예정입니다."
-외국 대학에서도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과정이 있는지요.
"미국 하버드대학에 비슷한 과정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와 서양은 역사나 문화 등 인문학의 근본부터 차이가 나기 때문에 그런 과정을 벤치마킹하기는 어렵습니다.
예컨대 서양사람들은 '존재론'에 바탕을 둔 개인주의가 사고의 근간인 데 반해 동양은 논어 맹자부터 불교의 인연론까지 '관계론'이 정신세계의 중심입니다. 어느 서양 기업인이 우리나라 상가집에 들렀다가 많은 사람들이 모여 '네트워킹'하는 것을 보고는 크게 놀랐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의 이런 '관계'가 자신들은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큰 비즈니스 자산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죠.인문학 최고지도자 과정에선 이 같은 독특한 우리 문화의 강점에 대해서도 많은 소개를 할 계획입니다.
'전통'을 '자산'으로 만드는 일이라고 할까요.
이런 과정이 잘 발전하면 위기라고까지 일컬어지는 인문학이 우리 사회에서 저변을 확대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정리=김동욱 기자/ 사진=김정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