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Report] '유럽의 화약고' 발칸의 변신‥ "경제에 좋다면 총리까지 수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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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 가입,미군기지 유치,국가신용등급 상향 조정,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루마니아는 흥분해 있었다.
중세와 근세 내내 오스만트루크의 지배,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나치 독일에 이은 소비에트러시아의 위성국으로 지내다 공산권 붕괴 이후 홀로서기를 하는 과정에서도 유혈이 낭자했던 발칸. 1000년이 넘도록 '유럽의 사생아' 취급을 받았던 비운의 반도국가들이 시장경제에 눈을 뜨면서 '유럽의 이머징마켓'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40년 만의 폭염이 지중해와 유럽 대륙을 휘감고 있던 8월3일. 부쿠레슈티행 여객기를 기다리는 파리 드골공항의 대기실부터 표나게 들뜬 분위기였다.
프랑스의 명문 인시아드 경영전문대학원(MBA)을 마치고 10년 만에 귀국한다는 마르스 비소비치씨는 "부모님 손에 이끌려 떠날 땐 돌아올 거라곤 생각하지도 못했었는데 EU 가입으로 부쿠레슈티에도 전문직 일자리가 늘고 있어 귀국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루마니아 국영은행 BCR를 인수한 오스트리아 은행의 국제금융부 인턴으로 일하게 됐다고 했다.
혼란기에 조국을 등졌던 300만 해외 루마니아인들이 EU 가입으로 희망이 보이자 'U턴'하기 시작한 것이다.
영국계 컨설팅회사 D&P 소속 루마니아 1세대 기업분석가라는 가브리엘 엘레수쿠씨는 발칸 기획취재에 나섰다는 기자의 소개에 상기된 표정으로 일장연설을 한다. "EU 가입과 함께 미군기지를 유치함으로써 경제는 서유럽,안보는 미국이 보장하는 역사상 최상의 구도가 짜여졌다. 유럽의 화약고에서 유럽의 마킬라도라(미국 접경에 위치한 멕시코의 세계적인 산업단지)로 발전할 기틀이 다져진 셈이다. 그동안 망설이던 미국 자본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엘레수쿠씨의 설명대로 미국의 대루마니아 투자는 2005년 40억유로(약 54억달러)에 이어 작년에는 80억유로로 급증했다. 국가신용등급도 BBB+에서 A-로 올랐다. 경제성장률도 EU 가입 선배들인 폴란드 헝가리 체코보다 훨씬 높다.
호텔에서 만난 루마니아 정부기관 자문관인 독일인 컨설턴트 에릭 슈마허씨는 "EU 가입 과정에서 주도권을 잡은 개혁파들이 금융에서 전력까지 전 산업에 걸쳐 국영기업의 해외 매각에 급피치를 올리면서 외국계 기업의 진출이 러시를 이룬다"고 전했다.
그는 "외자 유입과 경기 호조세가 지속되면서 '경제에 좋다면 총리도 민영화,해외소싱할 수 있다'는 조크가 나돌 정도로 친시장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기야 이 나라의 역사를 보면 '총리 수입'도 말장난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차세계대전 직전 반짝 황금시대의 기틀을 닦은 카를 1세 국왕은 프러시아에서 모셔온 군주(프러시아 왕의 사촌)였다.
현재 경제개혁을 이끄는 바셰스쿠 대통령도 공산주의 시절부터 해외 경험을 쌓은 마도로스(선장) 출신이다.
개혁 드라이브 속에 보수적으로 소문났던 교육계까지 시장에 뛰어들었다.
국립농업대학의 경우 영국계 개발회사와 49 대 51로 개발펀드를 만들어 부쿠레슈티 외곽의 농업연구시험장 부지(45만㎡)에 '동구권 최대 규모의 루마니아판 잠실롯데월드'를 짓고 있다.
스웨덴의 세계적 DIY 가구업체인 이케아와 프랑스의 대형마트 까르푸는 이곳에 이미 개점했다.
루마니아와 함께 EU에 가입한 불가리아 사람들은 "'혁명'을 하고 있다"는 표현을 곧잘 쓴다.
'혁명'은 '사회주의 체질을 일소하고 시장 체질로 변신하는 것'을 말한다.
이 나라는 올 들어 법인세를 유럽 최저인 10%로 인하했고 내년부터는 모병도 징병제에서 미국식 직업군인제로 바꾸는 등 '혁명'을 진행 중이다.
발칸국가들의 개혁에는 EU의 당근도 큰 몫을 하고 있다.
EU는 시장 친화적 제도 도입을 조건으로 불가리아에만 2013년까지 각종 인프라 개선과 국영기업 민영화 촉진자금 등으로 약 160억유로를 지원한다.
발칸은 브뤼셀(EU 본부)의 기대에 부응할 인적자원 기반이 좋은 게 큰 장점이다.
"퀵서비스 콜센터 같은 단순 서비스 인력도 영어,불어나 이탈리아어,러시아어,인접국말 등 3~4개 외국어로 의사소통을 할 정도로 다언어·다민족·다문화 풍토가 역사적 체질로 뿌리내린 관계로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이 예상보다 빨리 정착될 것이다."(게오르규 뮤치바비치 루마니아 딜로이트컨설팅 대표)
1000여년에 걸친 강대국들의 교차 지배와 여러 종교의 중첩 영향으로 형성된 다언어·다문화 체질이 글로벌 경제 시대를 맞아 빛을 발하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쿠레슈티·소피아=이동우 부국장 leed@hankyung.com
중세와 근세 내내 오스만트루크의 지배,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나치 독일에 이은 소비에트러시아의 위성국으로 지내다 공산권 붕괴 이후 홀로서기를 하는 과정에서도 유혈이 낭자했던 발칸. 1000년이 넘도록 '유럽의 사생아' 취급을 받았던 비운의 반도국가들이 시장경제에 눈을 뜨면서 '유럽의 이머징마켓'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40년 만의 폭염이 지중해와 유럽 대륙을 휘감고 있던 8월3일. 부쿠레슈티행 여객기를 기다리는 파리 드골공항의 대기실부터 표나게 들뜬 분위기였다.
프랑스의 명문 인시아드 경영전문대학원(MBA)을 마치고 10년 만에 귀국한다는 마르스 비소비치씨는 "부모님 손에 이끌려 떠날 땐 돌아올 거라곤 생각하지도 못했었는데 EU 가입으로 부쿠레슈티에도 전문직 일자리가 늘고 있어 귀국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루마니아 국영은행 BCR를 인수한 오스트리아 은행의 국제금융부 인턴으로 일하게 됐다고 했다.
혼란기에 조국을 등졌던 300만 해외 루마니아인들이 EU 가입으로 희망이 보이자 'U턴'하기 시작한 것이다.
영국계 컨설팅회사 D&P 소속 루마니아 1세대 기업분석가라는 가브리엘 엘레수쿠씨는 발칸 기획취재에 나섰다는 기자의 소개에 상기된 표정으로 일장연설을 한다. "EU 가입과 함께 미군기지를 유치함으로써 경제는 서유럽,안보는 미국이 보장하는 역사상 최상의 구도가 짜여졌다. 유럽의 화약고에서 유럽의 마킬라도라(미국 접경에 위치한 멕시코의 세계적인 산업단지)로 발전할 기틀이 다져진 셈이다. 그동안 망설이던 미국 자본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엘레수쿠씨의 설명대로 미국의 대루마니아 투자는 2005년 40억유로(약 54억달러)에 이어 작년에는 80억유로로 급증했다. 국가신용등급도 BBB+에서 A-로 올랐다. 경제성장률도 EU 가입 선배들인 폴란드 헝가리 체코보다 훨씬 높다.
호텔에서 만난 루마니아 정부기관 자문관인 독일인 컨설턴트 에릭 슈마허씨는 "EU 가입 과정에서 주도권을 잡은 개혁파들이 금융에서 전력까지 전 산업에 걸쳐 국영기업의 해외 매각에 급피치를 올리면서 외국계 기업의 진출이 러시를 이룬다"고 전했다.
그는 "외자 유입과 경기 호조세가 지속되면서 '경제에 좋다면 총리도 민영화,해외소싱할 수 있다'는 조크가 나돌 정도로 친시장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기야 이 나라의 역사를 보면 '총리 수입'도 말장난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차세계대전 직전 반짝 황금시대의 기틀을 닦은 카를 1세 국왕은 프러시아에서 모셔온 군주(프러시아 왕의 사촌)였다.
현재 경제개혁을 이끄는 바셰스쿠 대통령도 공산주의 시절부터 해외 경험을 쌓은 마도로스(선장) 출신이다.
개혁 드라이브 속에 보수적으로 소문났던 교육계까지 시장에 뛰어들었다.
국립농업대학의 경우 영국계 개발회사와 49 대 51로 개발펀드를 만들어 부쿠레슈티 외곽의 농업연구시험장 부지(45만㎡)에 '동구권 최대 규모의 루마니아판 잠실롯데월드'를 짓고 있다.
스웨덴의 세계적 DIY 가구업체인 이케아와 프랑스의 대형마트 까르푸는 이곳에 이미 개점했다.
루마니아와 함께 EU에 가입한 불가리아 사람들은 "'혁명'을 하고 있다"는 표현을 곧잘 쓴다.
'혁명'은 '사회주의 체질을 일소하고 시장 체질로 변신하는 것'을 말한다.
이 나라는 올 들어 법인세를 유럽 최저인 10%로 인하했고 내년부터는 모병도 징병제에서 미국식 직업군인제로 바꾸는 등 '혁명'을 진행 중이다.
발칸국가들의 개혁에는 EU의 당근도 큰 몫을 하고 있다.
EU는 시장 친화적 제도 도입을 조건으로 불가리아에만 2013년까지 각종 인프라 개선과 국영기업 민영화 촉진자금 등으로 약 160억유로를 지원한다.
발칸은 브뤼셀(EU 본부)의 기대에 부응할 인적자원 기반이 좋은 게 큰 장점이다.
"퀵서비스 콜센터 같은 단순 서비스 인력도 영어,불어나 이탈리아어,러시아어,인접국말 등 3~4개 외국어로 의사소통을 할 정도로 다언어·다민족·다문화 풍토가 역사적 체질로 뿌리내린 관계로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이 예상보다 빨리 정착될 것이다."(게오르규 뮤치바비치 루마니아 딜로이트컨설팅 대표)
1000여년에 걸친 강대국들의 교차 지배와 여러 종교의 중첩 영향으로 형성된 다언어·다문화 체질이 글로벌 경제 시대를 맞아 빛을 발하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쿠레슈티·소피아=이동우 부국장 lee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