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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데스크] 수도권의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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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화성시에 경찰서가 없다면 믿겠습니까?"

    설마했다.

    굳이 '살인의 추억'이라는 영화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부녀자 연쇄살인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곳에 경찰서가 없다니.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자신도 취임 6개월이 지나서야 그런 사실을 알았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화성군이 갈라지면서 '화성경찰서'가 오산시에 남게 됐고,그 경찰서가 서울 크기의 1.2배인 화성시까지 덤으로 관장하게 됐다는 것이다.

    두 지역의 인구가 경찰서를 나눌 정도는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서쪽으로 40㎞ 넘게 떨어진 서해바다의 제부도까지 커버하다보니 이 경찰서의 경찰 1인당 담당 인구는 전국 평균의 두 배인 1000명에 이른다.

    장기 미제사건이 많을 수밖에 없다.

    행정자치부가 김 지사에게 들볶이다 못해 얼마 전 화성시에 경찰서를 신설키로 했다.

    뒤늦긴 했어도 다행스런 일이다.

    시민들이 다리라도 펼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수도권이라면 흔히 분당이나 일산 용인 등만을 생각하게 된다.

    지방의 시각에서 보면 돈과 사람으로 넘쳐나는 곳이다.

    정부가 경제력 집중을 억제한다며 온갖 규제를 가해도 당연시되는 지역이다.

    그러나 이런 곳은 수도권의 일부일 뿐이다.

    소방서 얘기를 해보자.화성시에는 소방서도 없다.

    양주 연천 가평 등도 마찬가지다.

    이들 지역에 화재가 나면 다른 지역 소방서가 동원된다.

    가평의 면적은 서울의 1.4배다.

    소방차가 아무리 서둘러 출동해도 현장은 늘 잿더미가 된 뒤다.

    국민의 생명이 걸린 문제다.

    수도권 북부는 더하다.

    지방에도 군 단위 대학이 흔하다지만 이 지역에는 단 두 곳뿐이다.

    그것도 포천중문의대는 입학정원이 110명에 불과한 초미니대학이다.

    병원 등 다른 시설들도 대부분 같은 실정이다.

    '무늬만 수도권'인 셈이다.

    그런데도 규제는 여느 지역에 비해 많다.

    우선 경기도의 22%가 군사보호구역이다.

    연천은 무려 98%에 이른다.

    파주 김포 등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주민들의 재산권 행사가 극도로 제한돼 있다.

    팔당 양평 이천 등 7개 시·군은 수도권 상수원이라는 이유로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 지역이 받는 대접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물 값은 수자원공사가 모두 챙겨간다.

    반도체공장은 수질 보호와 국토균형 발전이라는 명목 아래 다른 지역에 빼앗겼다.

    반도체공장 대신 특전사나 떠맡으라는 중앙정부의 요구에 주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삭발이 고작이다.

    김문수 지사는 요즘 KBS에 강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경기도가 공영방송에서조차 소외당하고 있다고 생각해서다.

    KBS는 강원도에만도 무려 5곳에 지방방송국을 두고 있다.

    그러나 경기도에는 한 곳도 없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시청료를 걷어주는 경기도를 KBS 화면에서 본 적이 있느냐는 게 김 지사의 불만이다.

    TV수신료 분리징수 투쟁이라도 벌이겠다는 태세다.

    경기도가 납부하는 국세는 전국의 11.2%다.

    서울에 이은 2위다.

    그런데도 수도권 주민들은 여전히 찬밥 신세다.

    지방보다 훨씬 소외된 지역이 수도권에 즐비한데도 말이다.

    왜 이들이 서울과 인접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불이익과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수도권정비법을'정비'해야 하는 이유다.

    김정호 경제부장 jh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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