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道永 < 한양대 교수·문화인류학 >

아프간 한국 인질들이 모두 풀려났다.

불행 중 다행이다.

그러나 사건은 완전히 종결된 것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후폭풍의 무대는 한국 땅이다.

그리고 세계다.

인질 중 두 명의 살해는 끔찍한 일이지만,나머지 인질들이 무사히 석방된 것은 한국 외교의 빛나는 개가(凱歌)라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테러 단체와 협상하고 그들의 조건을 들어줌으로써 한국 외교의 위상(位相)이 실추됐다.

수많은 반대와 희생을 무릅쓰고 이뤄졌던 아프간 파병은 제대로 된 반대급부의 열매도 거두지 못한 채 막을 내린다.

온당한 존재로 인정받지 못하던 탈레반 무장 부족집단들은 손실 없는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바짝 엎드려 애걸하며 협상에 임하려는,그러나 그 방법조차 모르고 있던 한 국가의 태도에 탈레반 스스로도 잠시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결국 그들의 국제적 위상은 한국정부의 그것 이상이 되었다.

확인할 수 없는 '몸값'얘기는 차치하고 말이다.

승리를 자축한 탈레반은 앞으로도 납치를 계속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테러집단들이 이제 납치대상으로 미국인이나 독일인과 한국인 중 누구를 우선 노릴까? 미안한 얘기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인들은 이제 전 세계 테러집단들이 가장 선호하는 납치 대상 우선순위 리스트에 오르게 됐다.

보다 심각한 후폭풍은 한국 안에 숨어있던 갈등의 폭발 가능성 표출이다.

사건 전후로 나타난 한국사회의 의견대립은 어찌 보면 현 정부의 입장에 대한 비판적 시각 대(對) 우호적 시각의 대립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말 주목할 것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 내재된 채 덮여있던 '다문화' '다종교' 구조가 이제 본격적인 갈등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프간 피랍사건 초기,기독교의 선교활동에 대한 비난과 그에 대한 반박이 인터넷을 달구었다.

그리고 정부가 인질사건에서 전례 없던 '구상권'이라는 용어를 유행어로 만들면서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되었다.

국민의 안전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정부의 책임론 대 정부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위험지역으로 선교를 떠나 '국가'에 막대한 손실을 입힌 사람들에게 마땅히 비용을 물려야 한다는 의견의 대결이다.

정부 당국자는 "(해외)여행자 1200만명 시대에 이제는 정부도 어쩔 수 없다"는 발언도 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필자는 1997년 말 외환위기 사태의 충격에 직면해 극심한 공포로 우왕좌왕하던 한국사회의 혼란을 다시 본다.

공포는 상황에 대한 지식이 없을 때 극심하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새로운 세계에 들어섰는지를 아직 이해하지 못한 정부와 시민 모두의 혼란이다.

전 지구화를 통해 물자와 정보,인구가 대량으로 이동하고 섞이는 이 시대에 국가적 권위와 경계는 새로운 도전자들을 만났다.

직업집단,종교집단,테러집단,구호집단,취미집단,연령집단,종족집단들이 새로운 이익연합체의 결성과 네트워크를 통해 새로운 권력을 갖게 되었다.

탈레반을 비롯한 개별집단들의 전 지구적 정보력이 웬만한 국가의 그것을 앞선다.

외교부에 아프간과 파키스탄 전문가 한 명 없을 때 분당의 한 교회에서는 아프간 선교준비로 현지 언어를 공부한다.

교민(僑民)과 여행자들은 전 세계에 퍼져 흩어져 나간다.

남아공과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로 한국 교민이 나가 산다.

소말리아,나이지리아,필리핀,심지어 미국,러시아,영국,이탈리아,또 그 어딘가에서 인질사태는 계속된다.

밖에서도 물밀듯 들어와 섞인다.

2005년 수도권에서 결혼한 8쌍 중 한 쌍이 국제결혼이다.

새로운 네트워크와 집단들이 이합집산한다.

아프간 인질 사건은 우리에게 무슨 교훈을 남기고 '끝난 사건'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어떤 새로운 시대 한복판에 들어섰는지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새로운 기회와 위험에 가득찬 '전 지구적 다문화'시대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우리는 이 새로운 세계의 인질이자 주인이다.

이전(以前)의 시스템으로는 더 이상 되지 않는다.

이를 직시하고 준비하는 개인과 단체와 국가가 생존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