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러 파워게임속 '에너지로드'로 뜬다

푸틴, 발칸과 직거래로 EU 약화 기도

루마니아 등, 독자라인으로 양쪽 영향노려

지난 8월6일 발칸반도와 접한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위치한 그루지야 공화국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 대변인은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러시아의 SU-24 폭격기가 영공을 침범,수도 트빌리시 인근에 미사일을 발사했다"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 소집을 촉구했다. 브뤼셀(EU본부)과 백악관은 유럽 경제에 대한 군사 위협이라며 강력히 항의했다. 이날 발칸국가 TV들은 하루종일 톱뉴스로 되풀이 보도했다.

그루지야 공화국은 EU(유럽연합)가 11년간 각고 끝에 건설한 '러시아의 영토를 지나지 않는 첫 송유관인 BTC라인'(아제르바이잔 바쿠→그루지야 트빌리시→터키 제이한,1770km)이 지나가는 서유럽의 에너지 숨통과 같은 곳이다. 이 나라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 위협은 이라크 전쟁 수행,이란 압박,가스라인 보호 등 다목적으로 발칸에서 카스피해를 거쳐 중앙아시아에 대한 군사 전개를 강화하고 있는 미국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도 비쳐졌다.




이에 앞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6월24일 발칸의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에서 열린 남동유럽 에너지 정상회의에 참석한 자리에서 "발칸은 역사적으로 늘 러시아의 특별한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지역"이라면서 "유럽 가스 수요의 4분의 1을 공급하고 있는 러시아는 에너지 공급과 개발 모든 측면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길 원하며 발칸 국가들이 추구하는 '에너지허브개발'에 동참할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이 오기 직전 국영가스회사 가즈프롬은 '흑해해저와 발칸(불가리아)을 거쳐 오스트리아,이탈리아로 연결되는 새 가스라인(남부 스트림,3200km)' 건설 계획을 앞당겨 확정 발표했다. 이와 함께 러시아 남부→불가리아 부르가스→그리스 알렉산드루폴리스를 잇는 송유관 건설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런 사태에 대비해 EU는 루마니아와 불가리아를 회원국으로 가입시켰고 미국은 이들 나라에 군사기지를 확보했다.

"역사적으로 발칸은 강대국들이 벌이는 패권 다툼 '체스판'이었다. 하지만 이번 체스판은 사뭇 다르다. 발칸국가들이 서유럽과 러시아를 상대로 '에너지물류허브'로 부상한다는 야심적인 전략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오그니얀 민체브 불가리아 소피아대 정치경제학 교수)

이 구상의 첫 작품이 나부코프로젝트. 러시아가 아닌 카스피해지역 산유국에서 발칸을 거쳐 서유럽으로 통하는 '발칸판 BTC라인'을 건설하려는 것. "단지 러시아 에너지 우산으로부터 벗어나는 게 아니라 발칸을 '유라시아 에너지허브'로 만들어 공급파워(러시아)와 소비파워(서유럽) 사이에서 유통파워(에너지허브)로 발돋움하겠다는 것입니다."(맥킨지 발칸컨설턴트 조지 맥컬런)

루마니아가 주도하는 이 프로젝트에는 카스피해에서 서유럽까지 3400km의 파이프라인이 통과하게 되는 나라의 대표 에너지 기업인 터키의 보타스, 불가리아의 불가르가스,루마니아의 트란스가스,헝가리의 MOL,오스트리아의 OMV 등이 참여한다. 루마니아는 이와 별도로 카자흐스탄과 아제르바이잔에서 그루지야와 흑해,루마니아의 콘스탄차항을 거쳐 불가리아→세르비아→크로아티아→서유럽에 이르는 송유관도 구상하고 있다. 이 2개 라인이 완성되면 러시아의 에너지 우산은 그만큼 위력이 줄어 들게 된다. 루마니아의 구상은 발칸국가들에 에너지허브 경쟁을 유발시켰다.



크로아티아는 서유럽에 가까운 아드리아해안 정유산업을 대대적으로 일으킬 계획이고 그리스는 러시아든,카자흐스탄이든 모든 산유국과 전방위로 에너지라인을 연결할 계획이다. 물론 발칸의 독자라인 건설에는 서유럽의 자금이 대거 투입되겠지만 일단 완공되고 나면 소비국인 서유럽 국가들은 유통망을 통제하는 발칸국가들을 대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요컨대 발칸은 에너지 길목을 장악함으로써 몸값을 높인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이는 카스피해 지역의 그루지야공화국이 비산유국이면서도 BTC라인이 지나가는 덕분에 미국의 군사보호를 받고 연 5000만달러의 통과 수입을 챙기는 것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면 됩니다."(딜로이트 발칸 컨설턴트 미구엘 슈바드제)

소피아·자그레브·부쿠레슈티·베오그라드=이동우 부국장 lee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