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에 앞서 홋카이도를 많이 찾아 주신 한국 국민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이 말씀을 꼭 좀 전해 주세요."

지난달 31일 일본 홋카이도 도청 회의실. 일본 외무성이 주관한 외신기자 초청 1박2일 홋카이도 취재투어 마지막 일정이었던 홋카이도 지사 기자회견에서 다카하시 하루미 지사는 한국 특파원으론 유일하게 참가한 기자의 질문을 받자 대뜸 각별한 인사말부터 전하며 고개를 깊히 숙였다.

기자회견장에 있던 영국 프랑스 등 8개국 16명의 다른 특파원들이 모두 의아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기자를 쳐다봤다. 기자도 어리둥절했다. 도대체 홋카이도 지사가 왜 다른 나라는 제쳐놓고 유독 한국민에게 고마움을 표시한 걸까. 회견장을 나오자마자 홋카이도 도청에 나라별 관광객 수 통계를 요청했다.

자료를 보고서야 홋카이도 지사가 왜 한국민에게 그토록 감사했는지 이해가 갔다. 지난해 홋카이도를 찾은 한국 관광객은 13만3850명. 전년 7만50명에 비해 무려 91% 늘어났다. 전체 외국 관광객 59만650명 중 22.7%. 미국 유럽 중국 대만 등 다른 나라 관광객 수가 정체 상태인 것과 비교하면 가히 폭발적이다. 급증 추세는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엔저-원고를 배경으로 한국에서 불고 있는 일본 여행 붐의 한 단면이다.

홋카이도에서 한국인에 대한 대접이 달라진 건 물론이다. 홋카이도 국제공항은 올해부터 청사 내 한국어 안내 방송을 시작했다. 주요 관광지 도로표시판이나 안내판에도 일본어 영어와 함께 한국어를 나란히 넣었다.

그럴 만도 한 게 최근 급증한 한국 관광객은 일본에서도 경기 회복이 제일 더딘 홋카이도 지역 경제에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있다. 홋카이도 도야코온천관광협회 오니시 부회장은 "최근 1~2년 사이 홋카이도는 골프와 온천을 즐기러 오는 한국 관광객 덕분에 먹고 산다"고 말했다.

유명 온천지인 니세코 시내 스시점의 아사노 사장은 "한국 관광객은 손도 커서 단체 관광객이 한번 지나가면 시내 유명 상점의 명품은 거의 동난다"며 놀라워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홋카이도 주민들은 요즘 "한국을 향해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한다.

한국 관광객이 늘어난 건 홋카이도만이 아니다. 한국에서 가까운 규슈의 골프장은 한국인들이 전세 낸 지 오래다. 도쿄 유명 백화점 세일장에 새벽부터 줄을 서 기다리는 한국 여성들도 낯선 모습이 아니다. 올 들어 지난 7월 말까지 일본을 방문한 한국 관광객은 157만8149명. 작년 동기의 120만1249명에 비해 31% 늘었다. 같은 기간 한국을 찾은 일본 관광객이 3.7%,4만8954명 줄어든 것과 대조적이다. 올해 방일 한국 관광객이 방한 일본 관광객을 사상 처음으로 웃돌 게 확실시된다.

홋카이도 지사 기자회견장을 나오는데 친한 중국 기자가 어깨를 툭 친다. "한국이 참 부럽다. 세계 2위 경제대국 일본으로부터 절도 받고…." 왠지 칭찬으로만 들리지 않았다. 한국이 일본에 만성적 무역 적자국이란 건 세계가 다 아는 사실이다. 올 상반기 대일 적자는 150억달러에 육박해 연간으론 사상 최고치인 300억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해외 여행은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늘게 마련이다. 하지만 가난한 집 사람이 이웃 부잣집에 놀러가 너무 허세를 부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