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정상들 시드니에 모이지만…] '기후변화' 선진ㆍ개도국 갈등 예고
오는 8~9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리는 제15차 아시아ㆍ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핵심 의제를 놓고 회원국 간에 미묘한 갈등 양상을 빚고 있다.

4일 파이낸셜타임즈(FT)와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이번 APEC의 도마에는 △기후 변화 △WTO 도하라운드 협상(DDA) △아ㆍ태 자유무역지대(FTAAP) △북핵과 이라크 등 외교문제가 주요 의제로 오를 전망이다.

기후변화 문제는 이번 APEC의 핵심 중의 핵심 의제다. APEC 정상회의 주제가 '역내 공동체 심화와 지속가능한 미래 건설'일 정도다. 이번 회의에서 APEC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 배출을 25% 줄인다는 내용에 동의하는 특별 선언을 채택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개도국 국가들은 내심 불만섞인 표정이다. 말레이시아의 라피다 아지즈 통상장관은 "기후 변화는 아시아ㆍ태평양 국가들의 경제협력체인 APEC 의제로 적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국제연구소의 사이몬 태이 소장은 "APEC의 'E'는 경제(Economic)이지 환경(Environment)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개도국들이 꺼리는 기후 변화라는 의제를 APEC의 도마 위에 올려 놓은 미국 등 선진 회원국들에 대한 우회적인 비난이다.

교착상태에 빠진 '도하라운드'와 '아ㆍ태 자유무역지대' 이슈를 놓고도 미묘한 '온도차'가 감지된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도하라운드 협상의 조속한 타결을 촉구하는 '정상 특별선언문'을 채택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임기 16개월을 남겨 놓고 있는 그가 임기 안에 '도하라운드 타결'이란 치적을 만들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는 또 이번 APEC 회의를 통해 북미와 동아시아를 한데 묶는 '아ㆍ태 자유무역지대' 구성 방안을 진전시킨다는 구상이다. 환태평양 국가들은 미국 수출의 3분의 2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무역대상 지역이기 때문이다.

주최국인 호주의 데이비드 스팬서 APEC 대사는 이에 대해 "아ㆍ태 자유무역지대는 조만간 시작될 수 있는 의제는 아니라고 본다"며 "이번 회의에서 이에 대한 협상이 이뤄지진 않을 것"이라고 유보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이에 따라 이번 APEC 정상회의에서 아ㆍ태 무역자유화는 선언적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이다. 각국 정상들이 어떻게 외교력을 발휘해 미묘한 '정치ㆍ외교적 온도차'를 줄여나갈지가 이번 APEC의 관전 포인트다.

한편 북한 핵문제도 중요 이슈다. 부시 대통령은 이달 중순 열리는 6자 회담을 앞두고 APEC에서 한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과 북핵문제에 대한 공동 노선을 구축하는데 외교력을 집중할 계획이다. 최근 북한의 '연내 핵 불능화' 선언은 부시 대통령의 외교적 성과로 기록됐다. 이들 국가들과의 공동 전선을 통해 북한이 '올해 안'이란 마감 시한을 지키도록 압박한다는 복안이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