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한밤중 인사 내는 외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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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 달 전 미국 버지니아텍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을 때다.
기자는 범인이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사실을 퇴근 후인 저녁 8시쯤 제보받았다.
서둘러 외교부 기자실로 되돌아갔더니 출입 기자 30여명 중 3분의 1이 현장에 있었다.
기자들은 '낌새가 이상하다'는 정보를 '담합'했다.
외교부가 공식 확인해 준 것은 밤 11시가 돼서였지만 외교부 담당 기자들은 주미 한국 대사관,외교부,청와대 등을 깜냥대로 취재해 대부분 최소 한 시간 전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외교부뿐 아니라 기자들이 많이 모이는 부처에선 기자실에 순식간에 정보가 돌고 진위 여부가 가려진다.
기자들이 일부 정보를 담합할 때가 있는데 이는 더 나은 독점을 위해 기초 지식을 빨리 공유하는 이기적인 협력 체제다.
기자들이 대통령에게 "기자실에 죽치고 앉아 담합하고 있다"고 매도당하고 있지만 기자실의 담합은 기자들끼리만 한 것이 아니다.
정부도 공모자였다.
정부 부처가 수십 명 기자들에게 일일이 전화할 필요 없이 기자단 간사에게만 얘기하면 메시지는 금세 전파된다.
특히 외교부가 기자실의 담합을 잘 써먹었다.
외교부가 탈북자 기사나 납치 사건 등에서 "국익을 위해 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부탁하면 기자들은 탈북자들의 안전한 입국,피랍자들의 조기 석방을 위해 다함께 협조했다.
그런데 국정홍보처가 기자들의 담합 행위를 타파한다며 취재선진화 방안을 밀어붙이고 있는 사이 기자실 담합의 폐해는 기자들이 아니라 정부에서 심각한 것 같다.
외교부는 지난 3일 주미 대사관 공사 등 공관장 인사를 밤 10시에 발표했다.
출입 기자들에게 단체 문자 메시지를 발송해 '공관장 공사·과장 인사 보도자료를 홈페이지에 게재하고 자정까지 엠바고'라고 알렸다.
조간에 보도해 달라는 것이다.
밤 10시면 서울 이외 지역 신문에는 반영할 수 없는 시간이다.
'보도하려면 하고 아니면 말라'는 식이다.
기자들은 정부에 선진 취재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하는 게 아니다.
단지 부당하게 방해하거나 행정 편의를 위해 이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정지영 정치부 기자 cool@hankyung.com
기자는 범인이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사실을 퇴근 후인 저녁 8시쯤 제보받았다.
서둘러 외교부 기자실로 되돌아갔더니 출입 기자 30여명 중 3분의 1이 현장에 있었다.
기자들은 '낌새가 이상하다'는 정보를 '담합'했다.
외교부가 공식 확인해 준 것은 밤 11시가 돼서였지만 외교부 담당 기자들은 주미 한국 대사관,외교부,청와대 등을 깜냥대로 취재해 대부분 최소 한 시간 전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외교부뿐 아니라 기자들이 많이 모이는 부처에선 기자실에 순식간에 정보가 돌고 진위 여부가 가려진다.
기자들이 일부 정보를 담합할 때가 있는데 이는 더 나은 독점을 위해 기초 지식을 빨리 공유하는 이기적인 협력 체제다.
기자들이 대통령에게 "기자실에 죽치고 앉아 담합하고 있다"고 매도당하고 있지만 기자실의 담합은 기자들끼리만 한 것이 아니다.
정부도 공모자였다.
정부 부처가 수십 명 기자들에게 일일이 전화할 필요 없이 기자단 간사에게만 얘기하면 메시지는 금세 전파된다.
특히 외교부가 기자실의 담합을 잘 써먹었다.
외교부가 탈북자 기사나 납치 사건 등에서 "국익을 위해 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부탁하면 기자들은 탈북자들의 안전한 입국,피랍자들의 조기 석방을 위해 다함께 협조했다.
그런데 국정홍보처가 기자들의 담합 행위를 타파한다며 취재선진화 방안을 밀어붙이고 있는 사이 기자실 담합의 폐해는 기자들이 아니라 정부에서 심각한 것 같다.
외교부는 지난 3일 주미 대사관 공사 등 공관장 인사를 밤 10시에 발표했다.
출입 기자들에게 단체 문자 메시지를 발송해 '공관장 공사·과장 인사 보도자료를 홈페이지에 게재하고 자정까지 엠바고'라고 알렸다.
조간에 보도해 달라는 것이다.
밤 10시면 서울 이외 지역 신문에는 반영할 수 없는 시간이다.
'보도하려면 하고 아니면 말라'는 식이다.
기자들은 정부에 선진 취재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하는 게 아니다.
단지 부당하게 방해하거나 행정 편의를 위해 이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정지영 정치부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