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합민주신당 일부 의원들이 이미 정부가 법적 규제를 않기로 확정한 대기업집단의 순환출자 금지를 재추진하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기업집단시책을 담당하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불가' 입장인 데다 소관 상임위원회(정무위)의 다수 의원이 반대하는 내용이어서 대선을 의식한 '정치적 제스처'에 불과하다는 지적이지만 재계는 불안하기 만하다.

대통합민주신당 소속 이계안 의원은 박영선 한광원 이인기 등 15명의 국회의원과 함께 자산총액 2조원 이상 대규모 기업집단의 순환출자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의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고 5일 밝혔다.

개정안은 A사가 B사에 출자하고 B사가 C사에 출자한 뒤 C사가 A사에 지분을 갖는 이른바 '환상형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안을 담고 있다.

아울러 '사실상의 지주회사' 개념을 새로 도입해 그룹 내 핵심기업을 지주회사로 간주,방사형과 피라미드형 순환출자를 원천 금지하도록 했다.

장래에 발생하는 출자에 대해서뿐 아니라 현재 출자돼 있는 지분에까지 소급 적용해 일정 기간 내에 처분토록 하는 '독소 조항'을 담고 있다.

순환출자를 해소하지 않는 기업은 우선 5년 동안 매년 출자지분의 20%씩 단계적으로 의결권에 제한을 받게 된다.

그 뒤 5년에 걸쳐 20%씩 나눠 강제 처분해 순환출자 고리를 무조건 끊도록 해놨다.

그러면서 개정안은 이에 대한 반대 급부로 기존 출자총액제한제도는 폐지하는 내용을 담았다.

재계는 지난해 11월 정부가 대규모기업집단시책을 통해 순환출자에 대해 강제적 수단을 동원하지 않기로 약속한 상황에서 대통합민주신당 일부 의원들이 같은 쟁점을 다시 들고 나온 것에 대해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그동안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5단체는 "한국 경제의 급속한 성장 시기에 적은 자본을 가지고 대규모 신규 사업을 하기 위해서 계열사 출자를 통해 재무 '레버리지(지렛대 효과)'를 극대화하면서 경영권까지 확보해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 때문에 그같은 출자구조가 형성된 것"이라고 설명해왔다.

순환출자구조를 '절대악'으로 단정하고 법적 규제를 가하는 것은 지나친 '기업 죽이기'라는 얘기다.

순환출자 고리를 끊으려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는 게 재계의 설명이다.

삼성그룹이 순환출자를 해소하고 지주회사 체제로 가는 상황을 가정해보면,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을 100조원이라고 했을 때 삼성전자의 지주회사는 부채비율 200%를 지키면서 '상장 자회사 지분 30% 이상 보유' 조건을 넘기려면 최소한 10조원의 자기자본을 보유해야 한다.

이건희 회장 일가가 지주회사의 50%를 소유하기 위해 5조원의 자금을 당장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또한 차등의결권이나 의결권 상한제 등을 통한 경영권 방어 수단이 없는 한국에서 순환출자된 지분을 강제로 매각하게 한다면 한국의 우량 기업들이 적대적 M&A 위험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전경련 관계자는 "가공 자본이라는 것은 분식 회계와는 다른 것으로 이미 재무제표 등으로 모두 공시되는 정보이며 의결권 문제도 미국의 경우 순환출자는 없다 하여도 의결권을 10배나 주는 차등의결권 주식 발행 등으로 경영권을 방어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며 "잠재적 폐해 가능성만으로 사전적인 규제를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