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한화그룹은 한화건설을 통해 일본계 펀드 오릭스가 보유했던 대한생명 지분 17%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증권가에서는 인수 예상금액이 6000억원을 넘는 거액이라 다른 계열사들과 나눠 인수하는 가운데서도 한화가 인수 주체가 되는 것을 최상의 구도로 전망했었다.

그럴 경우 대한생명 지분이 40%가 넘어가면서 한화가 보유한 자회사의 총 지분가치가 한화 총 자산의 50%를 초과하게 되어 지주회사 전환 요건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인수 주체는 한화가 아니라 한화의 100% 자회사인 한화건설이었다.

직접 매입하지 않고, 굳이 ‘쓰리쿠션’을 먹인 이유는 무엇일까.

한화그룹에서 보도자료를 통해 공식적으로 밝힌 이유는 “한화건설이 계열사 중 자금력이 상대적으로 풍부하고 향후 지분 가치 상승에 따른 투자 수익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이것도 한 이유이긴 하다. 증권가에서는 한화그룹의 자금여력이 넉넉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좋은 것으로 보이는 한화건설이 총대를 멨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김장환 서울증권 애널리스트는 “한화건설도 일단은 인수 자금을 외부에서 차입해야 할 상황일 것”이라며 “한화건설은 내년에 에코메트로 사업과 시흥 매립지 처분으로 상당한 현금이 들어올 예정인데, 미래에 들어올 자금을 감안해 인수 주체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단계 더 들어가보면 한화그룹의 지주회사 체제 전환까지 시간을 벌기 위한 고민의 결과로도 볼 수 있다.

한화가 지주회사 체제로 가려면 험난하기 이를 데 없는 ‘가시밭길’을 지나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지주회사가 되려면 한화의 부채비율은 100% 이하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2007년 6월말 기준 한화의 부채비율은 244.1%에 달한다. 6월말 기준 부채는 무려 3조1800억원.

지주회사가 되려면 3조원대의 부채를 절반 이상으로 낮춰야 한다는 얘기다.

김장환 애널리스트는 “부채비율을 100%로 낮추려면 2조원대의 부채를 해결해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 밖에도 한화가 향후 예금보험공사가 보유한 대한생명의 지분 16% 인수를 또 준비해야 하는 입장도 고려된 것으로 추정했다.

아무튼 한화그룹의 지주회사 체제 변신은 몇 년 이상 걸릴 장기 프로젝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화 측이 지속적으로 “지주사 전환 문제와 관련해 아무것도 검토한 것이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한경닷컴 이혜경 기자 vix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