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아람 < 프로골퍼 aramsuh@daum.net >

나도 같이 골프를 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물론 볼을 잘치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다.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사실 난 플레이가 느린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플레이가 더딘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시간을 빼앗는 것이기에 나머지 동반자는 그 만큼의 시간을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골프를 배울 때는 뛰어다니면서 플레이를 했었다. 당시 사부님께선 "플레이를 할 때는 절대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고 엄명하셨다. 그래서 라운드를 나가면 볼을 잘 치는데 집중하기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열심히 뛰어다녔던 기억이 난다. 첫 시합에 나갔을 때 얼마나 뻘뻘 뛰어다녔는지 같이 치는 언니들이 "제발 그만 뛰어다녀. 정신이 하나도 없네"라고 얘기했을 정도였다.

프로골퍼인 필자가 생각해봐도 골프는 핑계가 많은 운동인 것 같다. 그만큼 신체적 컨디션과 정신적 상태,기후 등에 따라 샷이 천양지차를 보이는 예민한 운동이어서다. 볼이 안맞는 이유가 백 가지도 넘는다고 한다. 안맞는 마지막 이유로 '오늘은 왠지 안맞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래서 라운딩할 때는 동반자도 플레이에 큰 영향을 미친다. 어떤 사람의 성격을 알려면 술을 마셔보고,고스톱을 쳐보고,마지막으로 골프를 함께 쳐봐야 한다는 얘기가 있다. 영국에서는 고등학생이 되면 골프를 매너를 알기 위해 배운다고 한다.

실제 라운딩을 해보면 인격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간혹 공이 디보트 홀에 있을 경우 옮겨서 치고 싶은 유혹을 느껴본 적이 한두 번쯤은 있을 것이다. 이럴 때 로컬 룰을 어겨가며 '터치 볼'을 한다면 신사와 숙녀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는 셈이다.

얼마 전에 들었던 얘기인데,같이 플레이를 하던 사람이 공을 쳤는데 그린 주변에서 볼을 찾을 수 없었다. 익히 매너가 좋지 않은 것으로 평이 났던 그 사람은 호주머니에서 공을 몰래 꺼내 그린 주변에 놓고 쳤다. 이른바 '알까기'다. 나중에 알고보니 처음에 쳤던 공은 홀안에 들어가 있었다. 이글을 해놓고도 '알까기'를 하는 바람에 비신사적인 행동으로 손가락질을 받아 이후 지인들로부터 라운딩에 초대받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스포츠 중에 심판이 없는 운동은 드물다. 요즘은 마라톤도 중계를 해주니까 공개된다. 골프는 넓은 곳에서 자기와의 약속을 지켜가며 플레이를 하는 싸움이다. 골퍼 가운데는 실력과 매너를 겸비한 사람,실력은 뛰어난데 매너는 안좋은 부류,실력은 모자라도 매너는 좋은 사람,마지막으로 실력과 매너 모두 형편없는 부류 등 4가지가 있다. 실력과 매너가 모두 따라준다면 더할 나위 없다. 하지만 실력은 부족해도 매너를 지키는 게 실력에 비해 매너가 형편 없는 사람보다 백 번 낫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