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자금조달을 위해 양도성예금증서(CD)와 은행채 발행을 늘리면서 회사채나 기업어음(CP)을 발행하려는 기업들이 된서리를 맞고 있다.

은행채 발행이 쏟아지면서 은행채 금리가 급등하자 회사채 금리도 덩달아 뛰고,기업들이 채권발행 계획을 취소하거나 연기하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다.

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올 들어 예금이 증권사 자금관리계좌(CMA)등으로 급속히 빠져나가자 대출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CD와 은행채 발행을 늘리고 있다.

올 들어 8월까지 은행들의 CD순발행 규모는 21조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2조8000억원)의 7.5배에 달한다.

은행채는 1~8월 중 19조8000억원 늘었다.

최근 은행권의 대출증가 속도가 주춤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어 은행들은 신규 자금을 계속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여기에다 기존에 발행한 CD나 은행채 차환발행 물량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문제는 채권에 대한 시장의 수요기반이 약해졌다는 점이다.

공급(발행)이 늘어난 만큼 시장에서 소화(투자)가 되면 문제가 없는데 CD나 채권의 주요 투자처인 채권형 펀드와 머니마켓펀드(MMF)에서 자금이 계속 빠져나가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이다.

자산운용사뿐 아니라 은행 신용협동조합 등도 예금 이탈로 채권시장에서 운용할 자금 여력이 줄면서 채권투자에 소극적이다.

연기금이나 보험사들도 주식이나 해외펀드 투자 쪽을 늘리기 위해 채권운용 비중을 줄이는 추세다.

그러다보니 CD와 은행채 금리가 치솟고 있다.

은행채(AAA등급) 3년물의 경우 국고채 3년물과 비교한 금리차(스프레드)가 올초 0.19%포인트에서 0.34%포인트까지 벌어졌다.

CD금리는 6일 연 5.32%로 올 들어서만 0.45%포인트 상승했다.

채권 매입에 나서는 투자자들은 같은 값이면 회사채보다 안전성이 높다고 여겨지는 은행채를 선호하기 때문에 회사채 발행 땐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업들이 채권발행 계획을 미루거나 취소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지난달 현대산업개발은 1000억원의 회사채 발행을 추진했으나 입찰 과정에서 발행금리가 예상보다 높게 나오자 계획 자체를 취소했다.

한 증권사의 채권영업부 관계자는 "회사채 중 신용등급 AA이상은 그나마 매수자를 찾을 수 있지만 등급이 좀 떨어지는 회사는 선별적으로 소규모만 발행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부 기업들이 회사채 금리가 상승하자 단기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CP 시장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지만 CP발행 역시 단기물인 CD금리 급등의 영향으로 여의치 않다는 게 증권사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채권시장의 한 관계자는 "은행에서 자금이 이탈하는 구조적인 현상이 최근 회사채 금리 상승의 근본 배경"이라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해외 자금조달이 어려워진 기업들까지 국내 채권발행 쪽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어 회사채 금리 상승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