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을 이전하려는 기업들이 가장 먼저 묻는 게 입지조건입니다."

지방 중소도시에서 기업유치를 담당하는 A씨.다른 지자체와 기업유치 줄다리기를 하다 준비된 공장용지가 없다는 이유로 번번히 실패를 맛봤다는 그는 기업유치를 위해 지금은 공장용지 조성에서부터 사활을 걸고 있다고 밝혔다.

지자체마다 공장용지 조성에 경쟁적으로 나서면서 지방산업단지 조성 붐이 앞다퉈 일고 있다.

투자유치경쟁이 가열되면서 생긴 현상이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2007년 6월 말 현재 전국의 지방산단은 232개로 모두 2억6574만여㎡에 이른다.

2002년 말 159개에 2억160만㎡에 비하면 불과 5년새 73개 6400여만㎡가 우후죽순으로 조성된 셈이다.

기업을 데려오기 위해서는 인센티브나 행정지원 등 남보다 유리한 조건을 제시해야 하는 게 필수조건이다.

이 중에서도 준비된 공장용지 제공은 기업들의 투자 판단에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얼마 전 전남도가 '준비된 땅'이 없어 모 정유사 공장의 여수 유치에 실패하는 등 공장용지 때문에 땅을 친 지자체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특히 지역별로 사활을 걸고 나선 투자유치가 결실을 거둬 비어있던 기존 산단이 하나하나 채워지면서 새로운 공단조성의 요구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자체들이 새로운 공장용지 찾기에 몰두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지자체의 투자유치 경쟁이 산단 조성 경쟁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지방이전 기업에 세제감면 혜택을 주는 등 정부정책도 지방산단 조성 붐을 거들고 있다.

산업자원부는 30만㎡ 미만 지방산단에 대해 지정권자를 시·도지사에서 해당 시장 군수 구청장으로 이관하는 한편 인구 50만명이 넘는 시장도 독자적으로 산단을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산업입지 및 개발에 관한 법률 일부의 개정안을 입법 예고해 둔 상태이다.

지방산단 개발 열풍

조성이 한창인 지방산단만해도 전국적으로 모두 65곳에 이른다.

지역별로는 부산 7곳,대구 2곳,인천과 대전 광주 울산이 1곳,경기도 15곳,경남 10곳,충남과 경북이 8곳,충북 5곳,전남 4곳,강원 2곳,전북 1곳 등이다.

계획 중인 것까지 합하면 산단 숫자와 규모는 더욱 늘어난다.

산단 조성에 가장 적극성을 보이고 있는 곳은 경기도이다.

경기도는 산하 경기지방공사가 외국인투자기업 전용공단으로 평택의 어연한산,현곡산단을 조성해 분양을 완료한 데 이어 오산 가장산단과 김포 양촌산단 등 모두 15개 지방산단을 조성 중이다.

총면적만 1011만5000㎡에 달하는 규모이다.

전임 손학규지사 시절 외국기업만 100여개를 유치하는 등 수도권 규제 속에서도 활발한 투자유치로 지방산단이 일찍이 포화된 상태.특히 최근 중국의 제조업 환경이 임금상승,파업증가 각종 규제 등으로 악화돼 글로벌기업들이 인근지역으로 새로운 투자처를 찾거나 공장을 이전하고 있어 향후 산단 개발 속도는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인천시는 대규모 신산업 클러스터 조성을 목표로 검단신도시 인근인 서구 오류동 일대 2200㎡에 검단일반지방산업단지 조성을 추진할 계획이다.

대전시는 현재 조성 중인 424만㎡ 규모의 대전과학단지 외에 부족한 산업용지 확보를 위해 '산업용지 1000만평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시내 전 지역을 대상으로 산업용지 전환이 가능한 곳을 모두 찾아내 1205만6200㎡를 공단으로 개발할 계획이다.

충북도는 산업단지 지구 조성이 확정된 제천 제2산업단지를 비롯해 현재 추진 중인 6개 산업단지 조성 기간을 대폭 줄일 방침이다.

부산시도 기룡산단을 올해 말 완공하는 것을 비롯 화전 명지 명동 등 모두 7곳의 지방산단 866만㎡ 규모를 2010년까지 모두 완공할 계획이다.

전남도는 모두 16곳의 신규지방산단을 추진 중이다.

전북도도 6개시군 7개지구에 지방산단을 2012년까지 개발키로 했다.

울산시와 경남도는 각각 6개지구씩의 지방산단 개발을 준비하고 있다.

광주시도 기존 7개 지방산단이 포화상태를 맞아 평동 2차단지 등 2곳의 지방산단을 추가 조성키로 하는 등 지자체마다 산단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민자산단이 뜬다

"산단 하나 개발하려면 적어도 500억~1000억원대의 예산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토지보상비가 좀 나간다 싶으면 금세 2000억원을 훌쩍 뛰어넘습니다."

한 광역자치단체 산단개발담당 직원의 말처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돈'때문에 산단개발에 엄두를 내지 못한 지자체들이 많았다.

지자체들의 이런 고민은 민자개발방식의 산단조성 사업이 활기를 띠면서 해결점을 찾았다.

건설업계 입장에서도 아파트분양가 상한제,원가공개제도 등으로 위축되고 있는 건설경기 속에서 산단조성은 하나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또 민자개발이 개발기간 단축과 조성원가 절감 등의 효과가 있어 향후 지자체들의 민자개발 의존도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부산에서는 금정구 회동동과 해운대구 석대동의 해제된 개발제한구역을 도심형 첨단산단으로 조성하려는 사업에 민자개발방식이 도입되고 있다.

또 기장군과 부산도시공사가 공동 시행하고 있는 장안산단의 일부와 대선주조가 개발하는 기룡산단도 민간개발방식으로 개발이 진행 중이다.

충북도에서는 포스코와 계룡건설 등이 각각 청원 옥산민자산단,음성 원남산단을 비롯 대다수 기초 자치단체가 추진하는 산업단지를 민자로 개발해 분양할 계획이다.

전남도와 나주시가 추진하는 나주 왕곡지방산단도 2010년까지 서희건설과 나래랜드피아가 각각 시공과 분양을 맡아 개발할 예정이다.

중복투자 등 부작용 우려도

지방산단 개발이 경쟁적으로 추진되면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특히 지자체들이 투자유치를 위해 미리 공단을 조성해 놓으려는 경향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중복투자와 대규모 미분양사태의 위험도 지적되고 있다.

전북도의 경우 익산 2곳을 비롯 전주 김제 남원 완주 장수 등지에서 경쟁적으로 대규모 산단개발이 추진 중이다.

모두 7곳 1250만㎡로 도내 기존지방산단 11곳 2036만㎡의 절반을 넘는 규모이다.

더구나 도내에는 군장국가공단 330만㎡,전주과학산업단지 67만㎡ 등 모두 400만여㎡의 공장용지가 미분양 상태로 남아 있어 과잉투자 우려가 현실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경남도에서도 김해 등 11개 기초단체에서 12곳 1727만㎡의 산단 조성을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도내에는 모두 8200여㎡의 미개발산단이 2015년까지 조성될 예정이어서 신규 산단 개발에 따른 공급 과잉이 우려되고 있다.

문제는 이를 조율할 시스템은 전무하다는 점이다.

한 광역자지단체 담당자는 "산단지정 신청은 세수 확대와 고용창출이라는 이유에서 오히려 일선 시·군에 독려하는 분위기여서 반려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밝혔다.

지방산단 지정은 건교부,사후 관리는 산자부 등으로 이원화된 현행 관리체계도 문제이다.

산업단지공단 관계자는 "1970년부터 지정승인과 관리업무과 각각 나뉘어지면서 산단 지정이 남발된 경향이 없지 않다"며 "이 때문에 지자체의 마구잡이식 산단 개발을 부추긴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전남대 박광서 교수(경제학부)는 "효율적인 산단 개발과 투자유치를 위해서는 지역 특성을 살린 차별화된 산단 조성이 바람직하다"며 "산단의 무분별한 개발이 현재는 약이지만 언젠가 독이 될 수 있어 지금이라도 이를 통제 조율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광주=최성국/대전=백창현/부산=김태현/대구=신경원/울산=하인식/인천=김인완 기자 sk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