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최고(最古)의 와인 명가인 안티노리(Antinori)가 1975년 '티냐넬로(Tignanello)'를 내놓기 전만 해도 이탈리아 와인은 '내수용'이라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고대 로마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와인 역사를 자랑 하면서도 프랑스가 '샤토 마고' 등 특급 와인을 내세워 세계를 제패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티냐넬로'는 이 같은 이탈리아의 불명예를 단숨에 회복시킨 와인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뉴욕타임스 등 와인 칼럼을 연재하는 주요 미국 언론들은 '티냐넬로'를 탄생시킨 피에로 안티노리 후작에게 "이탈리아 와인의 역사를 바꾼 거장"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미국의 와인 마니아들은 '티냐넬로'에 '슈퍼 토스카나(Super Toscana)'란 애칭을 붙여주며 열광했다.

'티냐넬로'가 주목을 받은 토대는 '혁신'에 있었다.

토착 포도 품종(산지오베제)과 고유의 생산 방식을 고집하던 당시 와인 생산자들의 관습에서 과감히 탈피한 것.산지오베제를 기본으로 하되 프랑스 포도인 카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를 블렌딩하고,숙성 과정에서도 전통적인 대형 양조통이 아닌 카라티(carati)라고 불리는 225ℓ의 소형 프랑스산 새 오크통을 사용했다.

'티냐넬로' 이후 '솔라이아' 등 여러 '슈퍼 토스카나'가 나왔지만 국내에선 '티냐넬로'만큼 인기를 끈 것도 드물다.

작년 하반기엔 국내 최대 와인 수입업체인 와인나라의 판매액 리스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한 대기업 회장이 임원에게 선물한 와인이란 입소문 덕분이기도 하지만 입안을 꽉 채우는 부드러운 질감이 젊은 여성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티냐넬로'는 연간 30만병 정도 생산되며 국내엔 2003년산이 주로 판매되고 있다.

올 연말께 2004년산이 나올 예정이다.

2003년산에 대해 엄경자 인터컨티넨탈호텔 와인 소믈리에는 "전반적으로 체리,딸기 등 잘 익은 과일향에 오크통에서 나오는 바닐라,토스트향과 약간의 매운 향이 느껴진다"며 "견고하면서 떫지 않은 타닌,높은 알코올 함량,그리고 낮은 산도가 적절히 균형을 이루며 입안을 꽉 채운 느낌과 비단 같은 깊고 부드러운 질감을 만끽하게 하는 와인"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폭염이라고 할 정도로 아주 더웠던 2003년 유럽의 날씨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과도한 일조량으로 포도 숙성이 너무 잘 이뤄져 달콤한 과일 잼 같은 느낌이 신선함을 떨어지게 하고,마지막 입안에서의 여운이 짧은 것이 아쉽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10년까지 장기 숙성이 가능하지만 지금 마셔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가격은 와인나라 소매가 기준으로 14만원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