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2012' 유치 폴란드 50兆시장 열린다

서울에 코엑스가 있다면 폴란드 바르샤바에는 '즈워테 테라츠(Zlote Tarasy)'가 있다.

'금빛 테라스'로 번역되는 이 쇼핑몰은 바르샤바 중심가에 자리잡은 데다 기차역과 직접 연결되는 덕분에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인다.

민소매를 입은 젊은 남녀는 최신 트렌드를 담아낸 의류 매장 앞을 서성이고,고상한 옷차림의 중년 여성은 아이의 손을 잡고 식품 매장으로 향한다.

2층에는 대형 전자유통 매장인 '사툰(Saturn)'이 입점한 상태.매장 입구는 40~50인치 크기의 대형 벽걸이 TV 차지다.

매장에서 만난 레흐 가제프스키씨는 "봉급이 오른 김에 거실의 29인치 브라운관 TV를 40인치 LCD TV로 바꾸기 위해 찾았다"며 "요즘 폴란드 도시민 중 브라운관 TV를 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부 유럽의 '거인' 폴란드가 오랜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전 국토를 폐허로 만든 제2차 세계대전과 1989년까지 이어진 공산체제가 남긴 상처를 말끔히 씻고,'신흥 경제강국'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2004년 EU(유럽연합) 가입이 연 6~7%에 달하는 눈부신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됐다면,지난 4월 우크라이나와 공동 유치에 성공한 유럽 최대 축구 잔치인 '유로 2012'는 폴란드 경제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됐다.

보이체흐 셸롱고프스키 폴란드 투자청 부청장은 "유럽컵이 열리는 2012년까지 50조원을 넘나드는 폴란드 역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될 것"이라며 "지금 속도라면 머지않아 서유럽 국가도 따라잡을 것으로 자신한다"고 말했다.

눈으로 확인한 폴란드는 '유럽의 공장'으로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한반도의 1.4배에 달하는 넓은 국토,동유럽과 서유럽을 잇는 지리적 이점,중동부 유럽 최대 인구(3800만명) 등 지금껏 '잠재력'으로만 치부되던 폴란드의 장점이 이젠 경쟁국을 압도하는 투자 유인책으로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2005년 이후에만 LG전자 LG필립스LCD 도시바 샤프 도요타 등 수십개 글로벌 기업들이 유럽 생산거점을 이곳에 세운 게 이를 방증한다.

올 1분기 투자신장률(29.6%)은 '세계의 공장'인 중국(25.3%)을 앞섰다.

지난 7월 말 폴란드공장 준공식장에서 만난 변대규 휴맥스 사장은 "여러 나라를 놓고 검토했지만 지리적 위치나 노동의 질 측면에서 폴란드가 가장 낫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토착 기업들도 새롭게 열린 폴란드 시장에서 약진하고 있다.

얀 라파워브스키 폴란드 상공회의소 고문은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토착기업들도 새로운 사업 기회를 만끽하고 있다"며 "국내에서 돈을 벌어 독일 기업을 인수하는 업체가 생겨날 정도"라고 말했다.

글로벌 기업들의 '폴란드 러시'와 토착 기업들의 사세 확장은 폴란드를 '중동부 유럽 최대 소비시장'으로 부상시켰다.

근로자들의 호주머니가 두둑해지면서 '씀씀이'가 커졌기 때문이다.

북유럽계 노르디아은행 폴란드법인의 김영완 부행장은 "폴란드 근로자들의 소득이 늘면서 주식형 펀드에 유입되는 자금도 매년 3배씩 늘고 있다"며 "기업공개가 활성화되고 주가가 폭등하면서 신흥 부자들이 속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흥 부자들이 소비를 주도하면서 일반 식품보다 2배가량 비싼 유기 식품(Organic food)이 날개 돋친 듯 팔리는 상황(김삼식 KOTRA 바르샤바 무역관 차장)이 됐으며,패밀리카로 각광받던 도요타의 소형차 야리스가 신흥 부자들의 '안주인용 차량'(프제미슬라우 스크제타 도요타 영업사원)이 됐다.

10년 전만 해도 찾아보기 힘들었던 골프 인구는 어느새 2만명을 넘어섰고(보리스 췌힌 폴란드 투자청 직원),제품을 고를 때도 "가격이 얼마냐"에서 "브랜드가 뭐냐"가 가장 중요한 잣대(천문규 삼성전자 폴란드법인 차장)로 바뀌기 시작했다.

오세광 KOTRA 바르샤바 무역관장은 "폴란드 주택건설 시장은 넘쳐나는 수요에 힘입어 지난해 17.5% 성장한 데 이어 올해는 20%가량 커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고 전했다.

바르샤바·브로츠와프(폴란드)=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