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명 배심원들 1시간 열띤 토론도

"37번 후보자님,2003년 형사 재판을 받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셨는데 이번 재판에서 공정하게 판단하실 수 있겠습니까."(검사) "6번 후보자님,노래방 도우미가 가정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1년 이상 교제한다면 다른 일에도 거짓말을 하리라 생각하십니까."(변호인)

10일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40명의 일반 국민이 배심원 후보자로 참여한 가운데 열린 모의 재판에서 배심원 선정 절차가 진행됐다.

내년부터 본격화될 '국민 참여 재판'을 앞두고 법원이 예행연습 자리를 마련했다.

배심원 선정 절차는 원칙적으로 비공개이지만 이날만은 공개로 진행됐다.

부적격 배심원을 걸러내기 위해 재판장(한양석 형사합의27부 부장판사)과 검사(서울중앙지검 오원근·최재민 검사),변호인(금태섭·함정민 변호사)의 날카로운 질문 공세가 이어질 때마다 배심원 후보자들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답변에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었다.

이번 모의재판 대상은 노래방 도우미였던 피고인이 불륜 관계를 맺다가 헤어질 것을 요구한 내연남의 아내를 살해한 사건.추첨으로 뽑힌 12명의 후보자에게는 피고인 및 증인과 인척 관계가 있는지,사건 내용을 아는지 등에 대한 질문이 계속됐고 결국 형사 재판을 받은 경험이 있거나 어머니가 강도 피해를 당한 경험이 있는 후보자,"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억울하게 피해 보는 사람들이 많다"고 답변한 후보자들이 검사의 반대로 제외됐다.

변호인 역시 이유를 밝히지 않고 일부 후보자를 배제했다.

제외된 후보자를 빼고 다시 추첨하는 등 네 차례의 질문과 답변을 거듭하는 진통 끝에 50~60대 남성 2명과 20~50대 여성 10명 등 모두 12명이 배심원으로 결정됐다.

배심원들은 신원을 알 수 없게 모두 가슴에 번호가 적힌 명찰을 달았고 호칭도 번호로만 불렸다.

이어진 공판에서 검사는 피해 현장의 약도를 슬라이드로 보여주는 등 배심원들을 설득하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피고인에 대한 배심원들의 분노를 유도하려는 듯 검사가 피가 묻어 있는 전선줄을 보여주자 일부 배심원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변호인 역시 가만 있지 않았다.

변호인 측은 "거의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입증하기 전에는 헌법에 따라 모든 피고인은 무죄로 추정해야 한다"며 피고인에게 범죄 의도가 없었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심문이 끝난 뒤 배심원들은 한 시간 남짓 평의를 열어 토론을 했다.

2004년 실제 일어났던 살인 사건을 재구성한 모의 재판인지라 결론을 내리기 쉽지 않은 듯했다.

실제 사건에서는 피고인에게 유죄가 인정돼 징역 15년형이 선고됐다.

이날 배심원으로 참여한 조모씨(57·회사원)는 "사건 내용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공판이 진행돼 처음에는 이해하기가 어려웠다"며 "재판부가 처음 참여하는 배심원들에게 질문하고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아 답변을 제대로 못할 때도 있어 실제 재판 때는 고쳐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다른 배심원(54·서울 방배동 거주)은 "여러 사람이 재판에 참여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판단을 하리라 생각된다"면서도 "모의 재판이라 관심이 있어 참여했지만 내년에 본격 시행되고 배심원 참여가 의무화된다면 개인적인 일도 있고 해서 나오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태웅/박민제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