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Report-'포스트붐'이 뜬다] (3) 용틀임하는 유라시아의 용 '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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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00만명 젊은 인구대국 … '빅 마켓' 변신 가속
개방+속전속결 … 5년간 평균 7% 고도성장
글로벌 맞춤형 인재 대학서 年 1만명 배출
지난 8월 초 현대자동차 터키 공장을 취재하기 위해 아침 일찍 이스탄불 중심부인 탁심 소재 호텔을 나섰다.
현대차 측에서 기사가 딸린 쏘나타를 보내 줬다.
지도 상으로 미리 봐 둔 이즈미트 지역의 현지 공장 가는 길은 유럽에서도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보스푸로스 해협과 마르마르 해를 끼고 있었다.
그러나 유려한 풍광을 맘껏 구경하겠다는 기대는 채 10분도 달리지 않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도심을 벗어나자 운전기사 렘지 바로글로씨(35)가 엄청나게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차량들로 붐비는 러시 아워의 고속도로를 달려 120km 떨어진 이즈미트 지역 현대차 공장에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은 50분 남짓."죽었다 살아났다"는 기자의 말에 이영택 공장장은 "기사가 살살 달렸는데 뭘 그러느냐"고 맞받는다.
돌아오는 길에 운전기사 바로글로씨에게 왜 그렇게 급하게 차를 모느냐고 물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터키 사람,특히 이스탄불 사람들은 뒤처지기 싫어하는 탓에 차를 급하게 운전하는 편"이라고 대답한다. 이스탄불에서 택시 운전을 하는 리드반 도간씨(29)는 "직업을 얻는 게 가장 중요하고,그 다음이 돈"이라고 말한다.
터키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정치도,경제도,종교도,시민들의 의식도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다.
정치는 먹고 살게 하는 정파를 지지하는 쪽으로,경제는 돈 많은 사람을 존경하는 분위기로,전 국민의 99%가 믿고 있는 이슬람은 일종의 전통 문화로 새롭게 좌표를 설정하는 모양새다.
◆접촉과 자극이 불쏘시개
"크레타에서 미케네로 옮겨 온 그리스 문명의 중심은 아테네보다 먼저 이오니아 지방(소아시아의 서해안 일대)에서 꽃을 피우게 된다.
오리엔트와 가까운 덕택인지 본토 그리스보다 먼저 부(富)를 쌓았다.
부를 쌓는 수단은 이 시기에는 통상밖에 없었다.
통상이란 다른 문명과의 접촉이다.
접촉은 정보라는 형태에 의한 자극을 초래한다.
부는 그 자극을 다른 형태로 바꾸는 데 매우 편리하다."(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중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오늘의 터키도 '접촉'과 '자극'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
터키는 경제 블록 유럽연합(EU),자원 보고 중동,구 소련 지역의 독립국가연합(CIS)과 접촉하고 자극받으면서 개방의 빗장을 열고 있다.
접촉과 자극의 덕분으로 터키는 최근 5년간 연평균 7%의 고도 성장세를 탔다.
30%를 넘나들던 살인적 물가는 2004년 한자릿수(9.3%)로 떨어진 뒤 안정세를 찾았고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2002년 2622달러에서 지난해 5126달러로 3년 새 2배 가까이 늘었다.
같은 기간 일자리도 240만개가 새로 생겨났다.
지난해 말 현재 터키 인구는 7471만명.유럽에서 독일(8240만명) 다음으로 많다.
게다가 인구의 63%가 35세 이하라는 점은 최대 장점이다.
평균 나이 29세.50개국이 비행 거리 세 시간 이내에 부챗살처럼 포진해 있다.
이스탄불에선 KFC,맥도날드,버거킹도 '철가방 서비스'를 한다.
유목민(돌궐족) 출신 DNA가 속전속결의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터키 최고 명문 보이지치 대학에서 만난 유서프군(전자공학과 2학년)은 "졸업 후엔 일본으로 유학 갈 계획"이라며 "경제 교류가 커지면서 극동 국가의 중요성을 알게 된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영어와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그가 다니는 보이지치 대학에선 비슷한 실력과 야망을 갖고 있는 젊은이들이 매년 2000명씩 쏟아져 나온다.
이 대학뿐만 아니다.
중동 공대 등 5개 대학 정도의 졸업생은 영어와 실무 능력이 뛰어난 맞춤형 인재들로 보면 된다.
글로벌 무대에 당장 내놔도 손색이 없는 인재들이 연간 1만명 이상 배출된다는 얘기다.
◆정치 안정에 외자 봇물 화답
터키 경제가 욱일승천하는 것은 외자가 봇물을 이루고 이에 따라 내수와 수출 경기가 살아나는 선순환을 이뤄내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와 섬유 분야에만 강점이 있었던 터키는 정보기술(IT) 금융 서비스 유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외자의 러브 콜을 받고 있다.
2002년 불과 6억달러 수준이던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2004년 12억9000만달러,2006년 174억4000만달러로 급증했다.
내수 시장은 '테스트 마켓'을 벗어나 '빅 마켓'으로 도약하는 단계다.
한국의 양대 전자 메이커인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지사를 최근 법인으로 전환,현지 영업에 체중을 싣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이창성 삼성전자 법인장은 "이스탄불만 놓고 보면 서유럽과 다를 바 없다"며 "대당 1599터키리라(1110만원)인 60인치 TV가 한 달에 30대 이상 팔려 나갈 정도로 프리미엄 수요가 많다"고 말했다.
외자가 봇물을 이루는 것은 정치 안정과 EU 가입 움직임 등이 물꼬를 터 준 결과다.
2002년 연정 시대를 마감하고 단독 정부를 구성한 정의개발당(AKP)은 지난 7월 말 열린 총선에서 재집권에 성공했다.
이어 8월 대선(국회를 통한 간선 방식)에서 대통령을 냈다.
정책의 연속성을 기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스탄불·앙카라=남궁 덕 기자 kduk@hankyung.com
개방+속전속결 … 5년간 평균 7% 고도성장
글로벌 맞춤형 인재 대학서 年 1만명 배출
지난 8월 초 현대자동차 터키 공장을 취재하기 위해 아침 일찍 이스탄불 중심부인 탁심 소재 호텔을 나섰다.
현대차 측에서 기사가 딸린 쏘나타를 보내 줬다.
지도 상으로 미리 봐 둔 이즈미트 지역의 현지 공장 가는 길은 유럽에서도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보스푸로스 해협과 마르마르 해를 끼고 있었다.
그러나 유려한 풍광을 맘껏 구경하겠다는 기대는 채 10분도 달리지 않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도심을 벗어나자 운전기사 렘지 바로글로씨(35)가 엄청나게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차량들로 붐비는 러시 아워의 고속도로를 달려 120km 떨어진 이즈미트 지역 현대차 공장에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은 50분 남짓."죽었다 살아났다"는 기자의 말에 이영택 공장장은 "기사가 살살 달렸는데 뭘 그러느냐"고 맞받는다.
돌아오는 길에 운전기사 바로글로씨에게 왜 그렇게 급하게 차를 모느냐고 물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터키 사람,특히 이스탄불 사람들은 뒤처지기 싫어하는 탓에 차를 급하게 운전하는 편"이라고 대답한다. 이스탄불에서 택시 운전을 하는 리드반 도간씨(29)는 "직업을 얻는 게 가장 중요하고,그 다음이 돈"이라고 말한다.
터키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정치도,경제도,종교도,시민들의 의식도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다.
정치는 먹고 살게 하는 정파를 지지하는 쪽으로,경제는 돈 많은 사람을 존경하는 분위기로,전 국민의 99%가 믿고 있는 이슬람은 일종의 전통 문화로 새롭게 좌표를 설정하는 모양새다.
◆접촉과 자극이 불쏘시개
"크레타에서 미케네로 옮겨 온 그리스 문명의 중심은 아테네보다 먼저 이오니아 지방(소아시아의 서해안 일대)에서 꽃을 피우게 된다.
오리엔트와 가까운 덕택인지 본토 그리스보다 먼저 부(富)를 쌓았다.
부를 쌓는 수단은 이 시기에는 통상밖에 없었다.
통상이란 다른 문명과의 접촉이다.
접촉은 정보라는 형태에 의한 자극을 초래한다.
부는 그 자극을 다른 형태로 바꾸는 데 매우 편리하다."(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중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오늘의 터키도 '접촉'과 '자극'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
터키는 경제 블록 유럽연합(EU),자원 보고 중동,구 소련 지역의 독립국가연합(CIS)과 접촉하고 자극받으면서 개방의 빗장을 열고 있다.
접촉과 자극의 덕분으로 터키는 최근 5년간 연평균 7%의 고도 성장세를 탔다.
30%를 넘나들던 살인적 물가는 2004년 한자릿수(9.3%)로 떨어진 뒤 안정세를 찾았고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2002년 2622달러에서 지난해 5126달러로 3년 새 2배 가까이 늘었다.
같은 기간 일자리도 240만개가 새로 생겨났다.
지난해 말 현재 터키 인구는 7471만명.유럽에서 독일(8240만명) 다음으로 많다.
게다가 인구의 63%가 35세 이하라는 점은 최대 장점이다.
평균 나이 29세.50개국이 비행 거리 세 시간 이내에 부챗살처럼 포진해 있다.
이스탄불에선 KFC,맥도날드,버거킹도 '철가방 서비스'를 한다.
유목민(돌궐족) 출신 DNA가 속전속결의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터키 최고 명문 보이지치 대학에서 만난 유서프군(전자공학과 2학년)은 "졸업 후엔 일본으로 유학 갈 계획"이라며 "경제 교류가 커지면서 극동 국가의 중요성을 알게 된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영어와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그가 다니는 보이지치 대학에선 비슷한 실력과 야망을 갖고 있는 젊은이들이 매년 2000명씩 쏟아져 나온다.
이 대학뿐만 아니다.
중동 공대 등 5개 대학 정도의 졸업생은 영어와 실무 능력이 뛰어난 맞춤형 인재들로 보면 된다.
글로벌 무대에 당장 내놔도 손색이 없는 인재들이 연간 1만명 이상 배출된다는 얘기다.
◆정치 안정에 외자 봇물 화답
터키 경제가 욱일승천하는 것은 외자가 봇물을 이루고 이에 따라 내수와 수출 경기가 살아나는 선순환을 이뤄내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와 섬유 분야에만 강점이 있었던 터키는 정보기술(IT) 금융 서비스 유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외자의 러브 콜을 받고 있다.
2002년 불과 6억달러 수준이던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2004년 12억9000만달러,2006년 174억4000만달러로 급증했다.
내수 시장은 '테스트 마켓'을 벗어나 '빅 마켓'으로 도약하는 단계다.
한국의 양대 전자 메이커인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지사를 최근 법인으로 전환,현지 영업에 체중을 싣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이창성 삼성전자 법인장은 "이스탄불만 놓고 보면 서유럽과 다를 바 없다"며 "대당 1599터키리라(1110만원)인 60인치 TV가 한 달에 30대 이상 팔려 나갈 정도로 프리미엄 수요가 많다"고 말했다.
외자가 봇물을 이루는 것은 정치 안정과 EU 가입 움직임 등이 물꼬를 터 준 결과다.
2002년 연정 시대를 마감하고 단독 정부를 구성한 정의개발당(AKP)은 지난 7월 말 열린 총선에서 재집권에 성공했다.
이어 8월 대선(국회를 통한 간선 방식)에서 대통령을 냈다.
정책의 연속성을 기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스탄불·앙카라=남궁 덕 기자 kdu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