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취임 1년도 채 안돼 불명예 퇴진하는 것은 각료들의 잇단 정치적 스캔들로 당내외 통솔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테러대책특별조치법 연장을 위해 야당인 민주당의 오자와 이치로 대표에게 회동을 요구했다 거절당한 게 사퇴의 직접적인 이유지만 이미 국정수행능력을 상실해 버티는 데 한계가 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테러대책특별조치법은 자위대가 공해상에서 미군을 비전투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한 법안이다. 다만 아베 총리가 10일 임시국회 개회 때까지만 해도 "정치불신에 대해 깊게 반성한다"며 지속적인 개혁을 약속하며 임무수행 의욕을 보인 뒤 이틀 만에 사의를 표명,시기적으로 다소 의외라는 평가다.

그는 7월29일 실시된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대패,당내 1당 자리를 민주당에 내준 뒤 주변의 사퇴 압력을 받아왔다. 취임 후 헌법개정을 추진하는 등 '전후 체제의 탈피'를 내세운 자신의 정치 노선에 먹구름이 깔리면서 자리도 위태해졌다. 그런 압력 속에서도 총리직 고수 의지를 보였지만 8·27 당정개편 이후에도 각료들의 스캔들이 연이어 터져나와 분위기를 쇄신하는 데 실패했다.

신임 농림수산상이 비리 의혹으로 일주일 만에 중도 사퇴한 데 이어 다른 각료들도 정치자금 수지 보고서상 오류가 잇따라 발각돼 국민들의 불신이 커졌다.

집권 1년 동안 각종 정치 스캔들로 물러난 장관만 해도 지난 5월 자살한 마쓰오카 도시카쓰 전 농림수산상을 비롯 6명에 달한다.

지지율도 곤두박질쳤다. 최초의 전후세대 총리,외조부가 총리(기시 노부스케)를 지낸 명문가 출신,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후원을 받은 유망주라는 찬사 속에 지난해 9월26일 취임할 때만 해도 지지율은 65%를 웃돌았다. 그러던 것이 연금 기록 부실 관리 파문에 이어 잇단 정치스캔들이 복합적으로 터지면서 30%로 내려앉았다.

그런 상황에서 호주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때 정치생명을 걸고 약속했던 테러대책특별조치법 연장 전망이 불투명해짐에 따라 백기를 들어버린 것이다. 주위에선 정치력보다는 '허명(虛名)'으로 권좌에 오른 정치인의 최후를 보여줬다고 평가하고 있다.

아베의 사의 표명으로 FTA(자유무역협정) 협상 등 한·일 현안은 당분간 진척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최인한 기자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