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선 스트립 댄서들이 라이브 쇼를 하고 있었다.

동료와 고객에게 가려면 그 앞을 가로질러야 했다.

나는 서류 가방을 꽉 쥐고 그 쪽으로 걸어갔다.

내가 꼭 바보 같았다.

… 난 업무 성과나 결정된 사안으로 평가받으려 노력했지만 항상 내 성별과 외모,성격에 대한 기사가 더 중요하게 다뤄졌다.'(칼리 피오리나,'힘든 선택들')

한 회계법인 대표가 속마음을 털어놨다.

자기자신 여성인데도 소속 회계사가 출산 휴가를 내면 솔직히 달갑지 않다는 것이다.

대체 인력을 구하기 쉽지 않고 구한다 쳐도 이중으로 부담해야 하는 임금이 부담스럽다는 얘기였다.

그러니 출산을 장려하자면 정부에서 개인별 지원보다 기업 쪽 보조를 늘려 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놨다.

여성인력 활용과 출산율 제고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은 이렇게 간단하지 않다.

정부 구호와 기업을 비롯한 현장 간의 괴리가 큰 까닭이다.

시험 성적이 좋아도 여성만 뽑기는 어렵다는 곳도 많다.

야근이나 출장을 맡기자면 신경 쓰이고 업무 전문성을 터득할 즈음 출산으로 자리를 비우면 곤란하다는 이유다.

같은 월급 받는데 궂은 일은 도맡으니 역차별이라는 남성들의 볼멘소리도 나온다.

주위 사정 안 보고 칼 퇴근에 책임 질 일은 피하고 권리만 내세우는 여직원 때문에 힘들다는 윗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세상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자기 아내나 딸은 일찍 퇴근하기를 바라면서 남의 아내나 딸에겐 "특혜 바라지 말고 제대로 하라"는 게 현실이다.

앞서 인용한 피오리나의 고백에서 보듯 굴욕감을 느껴 스스로 포기하게 하거나,일 외의 요소로 평가해 좌절하게 만들거나,남성 중심 조직에서의 리더십 내지 대외 제휴력 등을 내세워 승진에서 배제시킴으로써 의욕을 꺾어 경쟁에서 탈락시키는 일도 잦다.

남성도 그렇지만 특히 여성이 조직에서 성공하려면 꾀를 부리기는커녕 밤낮 없이 일하고 발군의 실력을 발휘해야 한다.

"21세기는 여성의 시대다.

소프트 파워로 상징되는 여성 특유의 유연성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강조되고 있다"('2007 세계여성포럼' 개회사)지만 아직까지 직장에서 남녀의 특성 차이가 고려되는 일은 적다.

사정이 이런데 직장 여성이 애가 아프다는 거짓말로 일찍 퇴근한다는 광고가 나왔다.

"쇼를 하면 엄마의 퇴근 시간이 빨라진다"는 멘트를 곁들여.광고는 아이가 아프면 엄마는 무조건 뛰어가야 하고 여자는 회사 일보다 집안 일을 우선시한다는 식의 사고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아마 퇴근하면 "이래서 여자들은…" 할 테고 가지 않으면 '모성애도 없는 억척스런 여자' 소리를 들을 것이다.

미디어의 힘은 무섭다. '착한 당돌함'만으로 '팔자를 고친다는' 신데렐라 드라마와 이런 류의 광고는 남녀의 업무 생산성이 다르다는 편견을 확대 재생산하기 십상이다.

언젠가 한 건설회사가 아파트 광고를 하면서 '오래될수록 가치 있는 「것」' 속에 '10년 된 아내'를 포함시켰다 교체했다.

'무심코 그랬다'고 할지 모르지만 '무심코'는 '의도적인' 것보다 더 고약하다.

의도적인 건 의도하지 않으면 되지만 무심코 그런 건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육과 집안일은 여자 몫,직장일은 남자 몫'이라는 이분법이 바뀌지 않는 한 여성 인력의 효율적 활용도,출산율 제고도 궤도에 오르기 어렵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