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10일 오후 6시 뉴욕 맨해튼의 뉴욕대학.크지 않은 강의실에 150명 이상의 사람이 빼곡이 몰려 있다.

대부분 월가에 종사하는 사람들.다름아닌 프레데릭 미시킨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이사의 강연을 듣기 위해서였다.

오는 18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FRB가 기준 금리를 내릴지 여부는 월가 최대의 관심사다.

그런 만큼 벤 버냉키 FRB 의장의 '복심'으로 불리는 미시킨 이사의 연설은 월가의 관심을 잡아매기에 충분했다.

연단에 오른 미시킨 이사의 첫마디는 이랬다.

"9·11테러 6주년은 모든 미국인들의 가슴을 무겁게 하지만 특히 뉴욕 금융시장에는 남다른 무게를 준다"고.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파문에 따른 신용위기 상황을 염두에 둔 말이었다.

6년 전 이맘때도 그랬다.

정보기술(IT) 거품 붕괴로 경기 침체가 우려되던 상황에서 9·11테러가 터졌다.

당시 월가의 구세주는 '마에스트로(거장)' 앨런 그린스펀 FRB 의장.그린스펀은 테러 6일 만에 기준 금리를 전격적으로 0.5%포인트 인하했다.

금리 인하는 계속돼 그 해 말 40년 만에 최저인 연 1.75%까지 떨어졌다.

덕분에 월가는 테러의 충격에서 빠르게 벗어났다.

이런 기억을 갖고 있는 월가에서는 서브프라임 파문이 터진 지난 8월 초부터 버냉키 의장을 주시하고 있다.

그러나 버냉키는 요지부동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이 52명의 이코노미스트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2%가 '버냉키의 정책 대응이 너무 늦다'고 답할 정도로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고 있다.

그렇다고 버냉키 의장에게 비난만 쏟아지는 건 아니다.

서브프라임 파문을 야기한 장본인으로 저금리를 너무 오래 지속한 그린스펀의 FRB가 꼽히는 마당이라 버냉키의 장고(長考)에 지지를 보내는 여론도 상당하다.

나중에 욕먹을지언정 발빠른 대응으로 위기를 진정시킨 그린스펀이 옳았는지,후유증 최소화를 위해 신중을 거듭하는 버냉키가 옳을지 아직은 모른다.

그렇지만 9·11테러 6주년을 맞아 월가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라는 또 다른 테러를 당해 휘청거리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