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에 가르쳐서는 안 되는 두 글자의 못된 말이 있다.

'소일(消日)'이 그것이다.

아,일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1년 360일,1일 96각을 이어대기에도 부족할 것이다.

농부는 새벽부터 밤까지 부지런히 애쓴다.

만일 해를 달아맬 수만 있다면 반드시 끈으로 묶어 당기려 들 것이다.'

다산 정약용(그림)의 '도산사숙록'에 나오는 구절이다.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이 글을 발췌해 놓고 그 밑에 이렇게 적었다.

'소일(消日)이란 날을 소비한다는 말이다.

쓸 게 없어 하루 해를 써버리는가? '그저 소일이나 하고 있다'는 말처럼 슬픈 말이 없다.

소일이란 단어 앞에서 인생은 문득 고여서 썩는다.'

정민 교수가 다산의 저작물 가운데 경세·수신·치학·독서·학문·경제 등 10개 주제의 가르침 120개를 엮어 '다산어록청상(茶山語錄淸賞)'(도서출판 푸르메)을 펴냈다.

다산이 '퇴계집'을 읽고 자신의 감상을 적은 '도산사숙록'을 저술했듯이 정 교수도 다산의 글에 자신의 감상을 하나씩 덧붙였다.

책 제목의 '청상'(淸賞)은 맑게 감상한다는 뜻.

첫 머리에 나오는 '이것과 저것'이라는 글은 다산의 '어사재기'(於斯齋記)에 실린 것.'내게 없는 물건을 바라보고 가리키며 '저것'이라 한다. 내게 있는 것을 깨달아 굽어보며 '이것'이라 한다….' 정 교수는 이 대목을 읽어주며 '기쁨은 먼 데 딴 데 있지 않다.

즐거움은 코앞 발밑에 있다. 그것을 찾아라'고 얘기한다.

다산이 두 아들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자주 언급한 '공부하는 방법'도 새삼 음미할 만하다.

책을 어떻게 읽고 어떤 책을 골라 읽어야 하는지부터 많이 읽는 것보다 제대로 읽는 것이 중요하다는 가르침까지 세세하게 들어있다.

집안 살림을 다스리고 가계를 꾸려가는 법 또한 새롭다.

다산은 제 몸과 식솔들의 끼니도 챙기지 못하면서 방안에 틀어박혀 도(道)와 인의(仁義)를 논하는 것은 공부도 아니고 그저 무능한 것이라며 누에를 기르고 특용 작물을 심어 자족한 이후에는 내다 팔아 이득을 남겨도 좋다는 등의 가계경영법까지 알려준다.

정 교수는 이 같은 다산의 가르침을 전하면서 경세제민의 원리와 수신제가의 지침을 하나씩 되새긴다.

'1각 1초도 헛되이 쓰지 말라'는 지침에서는 '몸과 정신을 부지런히 놀리는 것은 주어진 내 삶에 성심성의를 다하는 것,반듯하고 부지런한 몸가짐에서 바른 정신이 생겨나고 올곧은 삶이 이뤄진다'는 이치를 일깨운다.

다산의 깊은 철학이 이 책의 '뿌리'라면 정민 교수의 명쾌한 해설이 '가지'다.

200년을 넘나드는 두 사람의 시적인 문장이 갈피마다 즐거움을 더해준다.

276쪽,1만2800원.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