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파문에 따른 신용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파장으로 경기침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에 대비해야 할 때라는 의외의 답변을 제시했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미국 CBS방송의 시사 프로그램인 '60분'에 출연해 이같이 밝혔다.

1년 전 퇴임한 후 처음으로 가진 언론과의 공식 인터뷰는 16일(현지시간) 방영 예정이며 CBS는 일부를 13일 공개했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방송에서 여성 앵커인 레스리 스탤의 다소 공격적인 질문에 차분하지만 수세적인 어조로 답해 최근 일고 있는 그의 책임론에 상당히 부담스러움을 나타냈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서브프라임 파문의 폭발성에 대해서는 "당시 서브프라임 대출이 다소 느슨한 상태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2005년 말까지도 경제에 이처럼 심각한 영향을 미칠지는 정말 생각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그 심각성을 정말 인식하지 못했다"는 말을 반복해 그 자신도 상당히 당혹스러움을 나타냈다.

재임기간 중 방만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에 제동을 걸었어야 한다는 FRB 이사의 지적이 있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그런 대출 관행이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어 감독당국이 특별히 조사할 만한 사항이라고 판단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그러나 저금리를 너무 오랫동안 유지한 것이 최근 신용위기의 근본 원인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비판론자들은 잘못됐다"며 "당시(9·11 테러 직후부터 2004년까지) 경제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경색된 금융 시스템을 푸는 게 중요했다"며 "이를 위해 금리를 다소 낮은 상태로 유지하는 게 필요했다"고 해명했다.

그는 "만일 지금 FRB 의장이라면 신용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빠르고 극적인 조치(금리 인하)를 취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확언할 수 없다"며 유보적인 태도를 나타냈다.

"당시는 인플레이션 압력이 완화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금리인하 조치를 취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기 때문에 더 이상 그런 조치를 고수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특히 "벤 버냉키 FRB 의장이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고 답해 금리 인하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버냉키의 입장에 동조한다는 입장을 나타내 눈길을 끌었다.

그린스펀은 현재 자신의 최대 관심사로 장기적인 경기 부진이나 침체보다는 인플레이션을 꼽았다.

그는 "재임 기간 중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인플레이션 압력이 아주 낮았다"며 "이 덕분에 당시 10여년 넘게 미 경제가 침체(recession)로 빠지지 않고 견조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렇지만 지금은 시계추가 거꾸로 돌아가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는 상황"이라며 "이는 버냉키 의장이 높은 인플레이션에 맞서 고금리 정책을 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조성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번 인터뷰는 그의 회고록인 '격동의 시대(The Age of Turbulence)' 출간(17일)을 앞두고 이뤄졌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