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의 작은 도시 소프론은 치과의사가 주민 80명당 1명꼴이다. 이웃 나라인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손님들이 몰려온다. 의료 수준은 비슷하지만 가격은 3분의 1도 안되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의 경우 국민 3명당 1명이 이곳에서 치아 치료를 받는다. 미국 여성 제이미 존슨은 얼마 전 말레이시아 관광 중 당뇨병 판정을 받았다. 콩팥 기능이 마비된 상태에서 그가 긴급히 옮겨진 곳은 태국 방콕의 범릉랏 병원. 미국보다 훨씬 싼값에 치료를 받고 5성 호텔 수준의 대우를 받으며 무사히 관광을 마칠 수 있었다. 이 병원을 찾는 외국인 환자는 연간 40만명에 달한다.

◆선진국 환자도 치료 받으러 국경 넘는다

태국은 '의료 관광객'에게 매력적인 방문지다.

뛰어난 의료 인력과 저렴한 물가,잘 정비된 관광 인프라가 이곳의 무기다.


암 수술부터 치과 수술,가슴 성형까지 불가능한 것이 없다.

이외에 싱가포르 인도 헝가리 두바이 등도 글로벌 의료허브로 약진하고 있다.

입소문을 타고 자생적으로 떠오른 곳도 있지만 아예 국가가 나서서 의료허브를 조성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의료 관광이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이유는 간단하다.

고령화로 선진국 국민들의 의료 서비스 수요는 커지는데 국내 치료비는 비싸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의료보험 비가입자가 4000만명을 넘는다.

이들은 국내에서 거금을 들이느니 해외로 나가는 것을 선호한다.

보험 혜택에서 제외되는 성형수술과 치과 치료는 해외가 훨씬 경제적이다.

실리콘을 이용한 유방확대술,줄기세포 연구와 장기 이식 등 미국에서 허가를 받지 못한 수술도 해외에서 받을 수 있다.

공공 의료보험이 발달한 영국이나 캐나다에서는 신속하게 치료받기 위해 헝가리나 아시아를 찾는다.

국내에서는 치료 대기자 명단에 올려놓고 한참 기다려야 병원 문을 들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북미와 유럽의 잠재적인 의료 관광 소비자는 연 15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관련 업계도 의료 관광에 높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미국에선 글로벌초이스 헬스케어,메디컬투어 등 해외 의료관광지를 안내해주는 알선업체들도 수없이 생겨나고 있다.

◆의료허브의 핵심 여건은 저렴한 가격

의료허브의 핵심 조건은 역시 저렴한 가격이다.

헝가리가 유럽의 치과 치료 중심지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웃의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3분의 1도 안 되는 치료 비용과 고급 의료 수준이 입소문을 타면서 각국 환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의 경우 국민 3명당 1명이 헝가리에서 치과 치료를 받는다.

공급 초과 상태에 있던 헝가리 의료 인력들도 국경과 가까운 곳에서 환자 유치에 나섰다.

대표적인 의료 도시인 소프론의 경우 치과 의사가 주민 80명당 1명꼴이다.

시민 2500명당 한 명꼴인 영국이나 이탈리아 등에 비하면 압도적인 숫자다.

거리마다 해피 덴트,유로 덴트 등 쉬운 영어 이름을 단 치과 간판들이 각국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곳 특산인 와인도 덩달아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

소프론의 의료허브 부상은 헝가리 정부에도 자극이 됐다.

정부는 헝가리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인 세게드를 의료복합도시로 조성 중이다.

학생 2200명 중 725명이 외국 학생일 정도로 유럽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세게드 의대가 그 거점이다.

높은 수준의 바이오공학 및 의료 분야 인력을 지역의 의료 산업과 연계해 시너지 효과를 내겠다는 것.화이자,글락소스미스클라인,노바티스 등 쟁쟁한 다국적 의약 기업의 연구소를 유치하고 첨단 의료센터를 조성하는 게 그 첫 번째 목표다.

◆의료 비즈니스 환경 조성에 민관 힘합친다

헝가리가 자생적인 의료허브라면 민관의 강한 추진력을 통해 빠르게 성장하는 의료 도시도 적지 않다.

지난해 40만명의 해외 환자를 맞은 싱가포르가 대표적이다.

싱가포르 정부는 3대 국가 핵심 동력 산업 중 하나로 의료 분야를 지목한 후 환자 유치에 직접 나서고 있다.

의료 관광 지원기관 '싱가포르 메디신'을 설립,해외 관광객 유치와 국내 의료기관 감독을 총괄한다.

의료진의 경쟁력도 세계 최고 수준으로 관리하고 있다.

매년 200명 이하로 의사 배출 수를 제한하고 모자라는 의사는 외국에서 수입한다.

외국 의사를 초빙할 때도 해당 분야 의사로만 엄격히 한정한다.

싱가포르관광청은 매달 쇼핑과 관광 이벤트를 개최해 해외 환자들이 충분히 소비하고 돌아가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싱가포르의 성공을 가장 앞에서 이끄는 것은 역시 민간이다.

경쟁과 몸집 불리기를 통해 우선 세계적인 의료법인을 키우는 게 전략이다.

싱가포르 최대 의료법인인 파크웨이그룹도 그렇게 탄생했다.

1500여명의 전문의를 두고 있으며 100% 사전 예약제로 운영 가능하다.

말레이시아의 의료법인 판타이 홀딩을 인수해 중동 환자를 끌어들이고,상하이 분원을 지어 중국 부유층을 공략하는 등 공격적 경영을 펼친다.

파크웨이그룹의 이한섭 한국 지사장은 "그룹이 직접 투자해 운영하는 전 세계 14개 병원 네트워크가 강점"이라며 "병원이 공격적인 비즈니스를 펼치기 어려운 한국과 달리 싱가포르에서는 병원도 수익 사업체란 인식이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물론 경영 선진화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요소다.

파크웨이그룹은 증시에 상장한 이래 매년 실적과 계획을 투명히 공개한다.

파크웨이그룹의 2006년 총매출은 전년보다 54% 늘어난 8억6800만달러에 달했다.

◆손님을 왕처럼…높은 수준의 서비스는 기본

소비자들은 해외 의료여행을 통해 높은 서비스를 맛본다.

태국 방콕 범릉랏 병원의 환자들은 입국 후 공항에서 병원까지 리무진으로 모셔진다.

치료와 회복,귀국까지 병원 측이 세심하게 안내한다.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중국어 아랍어 등 언어 소통이 자유로운 것은 물론이다.

병원들은 환자들이 회복 기간 머무를 수 있도록 주변 고급 호텔들과 제휴를 맺고 홈페이지에 이를 안내하고 있다.

낮은 인건비 덕분에 서비스 분야에서 더 많은 직원을 고용할 수 있다.

범릉랏은 늘어나는 환자를 수용하기 위해 18층짜리 외래 환자 센터를 새로 짓고 있다.

이곳에서만 하루 6000여명의 외래 환자를 받을 수 있다.

국경에서 자유로워진 환자들을 붙잡으려는 각국의 노력은 갈수록 더해지고 있다.

매년 2만~3만명의 의사를 배출하는 의료 아웃소싱 대국인 인도도 의료허브로 자리잡기 위해 제도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는 '인크레더블 인디아'라는 관광 캠페인의 일환으로 1년 만기의 메디컬 비자를 만들어 의료 목적으로 입국하는 외국인에게만 발급한다.

의료 관광을 통해 매년 발생하는 수입은 총 3억3300만달러.2012년에는 이를 20억달러까지 높이겠다는 게 정부 목표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는 세계 최초의 의료 분야 경제자유구역인 헬스케어시티(DHCC)를 조성하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학 의료법인 등 이곳에 유치된 선진국 유명 의료센터들은 각종 세금 혜택과 업무 지원을 받게 된다.

명품시장과 백화점 등 각종 쇼핑시설과의 시너지 효과로 중동뿐만 아니라 북미와 유럽의 소비자도 공략하는 게 목표다.

레바논에는 주변 사람 모르게 성형수술을 받으려는 중동 여성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1만명 이상의 전문의 중 48%가 유럽이나 미국에서 학위를 받은 고급 인력이다.

5개 부처 장관과 의료단체들이 설립한 'K&M 국제의료관광위원회'는 장관이나 무역 관련 대표단이 중동 지역을 순회할 때마다 동행하며 마케팅활동을 벌인다.

남미의 아르헨티나,멕시코,브라질,볼리비아 등은 가까운 미국과 캐나다 환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아르헨티나인 30명 중 1명이 성형수술을 받았을 정도로 성형수술이 보편화된 곳이라 관련 기술 수준은 최고로 꼽힌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