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의 17대 대선 후보로 권영길 후보가 확정됐다.

1997년과 2002년에 이어 세 번째 도전이다.

권 후보는 16일 광주 5·18 국립묘지와 국립현충원 참배 등을 시작으로 공식적인 대선 행보에 나섰다.

권 후보는 15일 대선 후보로 확정된 뒤 수락연설에서 "일하는 사람,서민이 잘 사는 사회,부유세,무상교육,무상의료의 나라를 만들겠다"며 "진보적 정권교체를 통해 서민이 행복하고 평화가 넘치는 한반도시대를 열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4800만 민중의 꿈을 담아 코리아 연방공화국을 기필코 건설해 기존의 낡은 시대 국가체제를 근본부터 고쳐 땀흘려 일하는 사람이 주인이 되게 하겠다"면서 "상호 협력의 통일경제로 전환하고 미국의 눈치만 보지 않는 자주적이고 당당한 나라,통일과 공존의 새로운 한반도를 열어가겠다"고 역설했다.

권 후보는 언론인에서 노동운동 지도자로 변신하는 이례적인 길을 걸으며 진보정당의 대표주자로 자리잡았다.

일본 도쿄 야마구치현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빨치산으로 1945년 빨치산 소탕작전 때 총살된 아버지로 인해 그의 삶은 자유롭지 못했다.

출국조차 여의치 않았다.

그는 서울대 농대에 입학해 유신체제에 반기를 드는 비밀서클을 조직했다.

대학 졸업 후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일보에 들어갔다.

권 후보는 파리 특파원으로 생활하기도 했다.

10여년간의 특파원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그는 47세의 늦은 나이에 서울신문 노조 부위원장을 지내면서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언론노련의 초대,2대,3대 위원장을 내리 역임하면서 노동계에서 비중있는 인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1996년 민주노총 초대위원장에 선출되면서 노동계의 중심 인물로 부상한 권 후보는 97년 대선에서 민주노총과 전국연합,진보 시민단체가 결성한 '국민승리21'의 후보로 추대돼 처음으로 대권에 도전했으나 1.2%를 얻는데 그쳤다.

이어 2000년 4·13총선 때는 경남 창원을 지역구에 출마했다가 원내 진출에도 실패하는 쓴맛을 봤다.

2002년 민노당을 대표해 재차 대선에 도전했으나 3.9%의 득표율을 올리는 데 만족해야 했다.

권 후보는 2004년 17대 총선에서 다시 창원에서 출마,민노당 사상 처음으로 지역구 출신 의원이 되는 등 민노당이 의석 10석의 원내정당으로 거듭나는 데 기여했다.

△일본 도쿄(66) △경남고,서울대 농대 △서울신문 파리특파원 △언론노련 1,2,3대 위원장 △민주노총 초대위원장 △15,16대 대선 후보 △민노당 대표 △17대 의원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