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의 충격파가 영국을 덮치면서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이 '신뢰의 위기'에 직면했다.

블룸버그 등 외신은 BOE가 영국 제5위 모기지은행 노던록에 대한 긴급 구제금융에 나서면서 위신이 땅에 떨어졌다고 17일 보도했다.

서브프라임 사태 발생 즉시 적극적인 조치로 위기를 예방하려고 애쓴 유럽중앙은행(ECB)과는 달리 BOE는 그동안 방관적인 태도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특히 머빈 킹 BOE 총재(사진)의 일관성 없는 태도는 중앙은행의 신뢰도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는 분석이다.

킹 총재는 지난 12일(현지시간) 영국 의회 연설에서 "중앙은행이 단기 자금을 공급하는 것은 지나친 위험 부담"이라며 "이는 경제 충격에 대한 내성을 줄여 미래 금융위기의 씨앗을 키우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앞서 미국발 서브프라임 사태가 본격화될 때도 "세계적인 금융위기는 아니다"라고 상황을 오판했다.

하지만 킹 총재는 불과 이틀 뒤 노던록에 대해 무제한 구제금융을 제공키로 함으로써 그가 내세웠던 원칙을 뒤집었다.

런던의 금융 중심지인 시티 오브 런던에선 "더 이상 노처녀(Old-lady·BOE의 애칭)를 믿을 수 없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영국 헤지펀드인 GLS의 스테판 벨 거시경제 팀장은 "BOE가 사태의 심각성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일찍 조치를 취했다면 노던록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킹 총재가 그의 동료인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과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안일한 자세를 견지해 사태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LSE) 교수 출신인 킹 총재는 1980년대 버냉키가 MIT대학 교수로 있던 시절,옆 사무실에서 동료 교수로 일한 바 있다.

영국 야당인 보수당도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 추궁을 벼르고 있어 정치 문제로 비화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야당은 재무부와 BOE가 사태 초기에 신속하게 개입했더라면 노던록 사태가 지금처럼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오는 20일 의회에서 책임을 추궁할 것이라고 밝혔다.

2003년 6월 말 취임한 킹 총재는 내년 6월30일이면 5년 임기를 마치게 된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