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육영수 여사 피살 사건의 범인인 문세광이 범행 당시 조선호텔 1030호에 머물렀을 때가 호텔 보안을 맡으면서 가장 아찔했던 순간입니다.

사건이 나고 나서 택시 잡아 준 도어맨까지 (정부기관에) 불려다녔으니까요."

박상모 웨스틴조선호텔 보안과장(60)은 37년 경력의 호텔업계 청원경찰 1호 출신이다.

'관광객 저해사범 퇴치를 위해서' 서울 시내 주요 호텔에 청원경찰제가 도입된 1970년에 입사해 올해 12월로 정년퇴임을 앞둬 1호출신 중에서 유일하게 한 직장에서 정년 퇴임하는 기쁨을 누리게 됐다.

"호텔 보안 일이란 게 특수한 직업입니다.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과 직접 대면하기도 하고 대통령 같은 귀빈들 안전을 책임지기도 하지만 때론 좀도둑 잡는 일에도 신경을 써야 하거든요.

호텔에서 범죄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달려오는 사람이 호텔 보안과 직원들입니다."

월남전에서 갓 제대한 23세의 박 과장이 처음 북청색 청원경찰복을 입었을 무렵,그의 최대 임무는 외국인 귀빈 신변 보호였다.

"1970년대는 한국이 여러 국가들과 한창 수교를 맺던 시절이에요.

각국 대사들이 청와대로 신임장을 받으러 가기 위해 전날 조선호텔에 묵곤 했습니다.

1980년대엔 광화문 일대에서 시위가 많았는데 특히 반미 감정이 고조되던 때라 외국인 투숙객 귀가 시간을 일일이 체크할 정도였어요."

그 많던 '사건'들 중에서도 박 과장의 뇌리 속에 또렷이 남아 있는 일은 육영수 여사 피살 사건이다.

"문세광이 교포 행세를 했었어요.

검정색 프린스를 몰고 다니며 28세의 젊은이가 팁을 아무 때나 줘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신문 보도를 보고 범행 사실을 안 다음에 다들 깜짝 놀랐어요."

좀도둑과의 전쟁도 호텔 보안 직원들의 숙명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에 외국인들이 부쩍 많아졌어요.

외국인 전문 절도단이 특급 호텔 뷔페 식당을 중심으로 기승을 부렸습니다.

한 달에 한 건씩 도난 사건이 날 정도라 1994년에 특급호텔 사장 주선으로 사전 예방을 위한 정보 교환 차원에서 호텔 보안과장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박 과장은 호텔안전협의회의 초대 회장과 4대 회장을 지냈다.

"호텔 보안 직원의 역할도 시대에 따라 참 많이 변했습니다.

한때는 준(準)사법권까지 갖고 있을 정도로 경찰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요즘엔 고객이 부르면 언제든지 찾아가는 서비스맨으로 변신했어요.

그래서 아무리 무술 고단자라도 덩치가 위압감을 주고 험상궂은 사람들은 안 뽑아요.

요즘엔 키 175cm가 넘는 꽃미남들을 주로 선발합니다.

청원경찰복도 1996년에 일제히 일반 정장 차림으로 바꿔서 호텔에 가면 누가 보안 직원인지 알아보지 못할 겁니다."

올해를 마지막으로 일선에서 떠나는 심정은 어떨까.

"시원섭섭합니다.

한 직장에서 일하면서 사장 11명,총지배인 15명을 모셨으니까 더 원은 없습니다.

스웨덴 페르손 총리,룩셈부르크 황태자,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등 외국 귀빈을 지척에서 많이 보기도 했고요.

37년간 365일 내내 어깨를 누르던 짐을 이젠 벗어놓고 아내와 함께 푹 쉬고 싶습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