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 장순흥 부총장실에 외국인 3명이 찾아왔다. 사우디아라비아가 2009년 개교 목표로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이공계 대학 KAUST의 관계자였다. 이들은 압둘라 신임 국왕이 항구도시 제다에 세계 10위권 내에 드는 국제적인 이공계 대학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면서 KAIST 측의 도움을 요청했다.

이 대학교는 건물을 짓는 데만 2조원가량 투입하는 등 교수 충원과 연구비 등을 포함하면 모두 5조원가량을 쓸 계획이라고 한다. 과학기술 발전과 인재 양성도 '물량 공세'에 의해 성사될 수 있음을 과시하는 사우디아라비아다.

하지만 서구의 대학관계자나 언론들은 이 대학의 성공 가능성에 회의적이다. 당장 대학에 들어올 우수 인재와 사우디 출신 교수들의 확보가 관건이다. 종교와 인종을 차별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자유와 경쟁을 기반으로 하는 과학 연구를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게 서구 과학자들의 시각이라고 과학저널 네이처 최신호는 전한다.

과학기술부는 10조7500억원 안팎 규모의 내년 국가 연구개발(R&D)예산 요구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지난해보다 10% 이상 증가한 금액이다. 이 예산안이 그대로 국회를 통과한다면 우리나라 국가 연구개발사업비는 5년 새 2배 늘게 된다. 2002년의 연구개발 예산은 4조1230억원이었다. R&D예산이 10조원을 넘는 나라는 전세계 7개국뿐이고,이처럼 단기간에 금액이 급증한 사례는 한국이 유일하다.

정부가 밝히는 이유는 명확하다. 참여정부가 집권 초기 목표로 잡은 지방 R&D 투자 40%를 채워야 하고 기초과학 투자 비중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공계 인재 양성에도 확실한 투자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국가 R&D 10조원은 실로 과학계로서는 크게 환영할 만한 대단한 사건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역량과 인프라가 과연 R&D 10조원을 적절하게 쓸 수 있는지는 찬찬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 발전이 물량공세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5년간 갑작스럽게 늘어난 연구비 물량은 지방 소재 대학들에 많은 혜택을 안겨다 줬다. 대부분의 대학 연구실이 이런 '큰 떡'을 손쉽게 만질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일부 지방대 교수들은 이런 연구비를 크게 반기지 않는다. 이공계 기피현상으로 인해 연구할 대학원생들이 없기 때문이다. 외국 인력을 받아들이지만 언어문제 등으로 인해 같이 연구하기도 쉽지가 않다.

대형국책과제 실용화 사업도 사정은 비슷하다. 기술 수준과 사회적인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국채까지 발행해 벌인 '위그선 개발 사업'이나 '원자로 스마트사업' 등은 벌써부터 차질을 빚고 있다. 각종 가속기 설치사업은 그 실효성에 의문을 갖는 학자들이 늘고 있다.

정통부를 비롯한 정부 부처들은 국회에서까지 중복 투자라는 지적을 받으면서도 수백억원씩이나 들어가는 나노 팹 센터를 경쟁적으로 설치하고 있다.

올 정기국회가 시작됐다.

이처럼 늘어난 연구개발비가 제대로 쓰일지 내년도 예산심의과정에서 꼼꼼히 걸러져야 한다. 대학의 실정과 연구 인력의 규모,자질 등을 제대로 파악한 다음 예산안을 들여다봐야 한다. 관행이 되다시피한 나눠먹기와 중복투자는 철저히 가려야 하고,제대로 된 성과가 의심스러운 연구 과제들은 걸려내야 한다.

이게 국회가 할 일이다.

오춘호 과학벤처중기부 차장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