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 俊 石 < 한국산업기술재단 이사장 jsjung88@kotef.or.kr >

지난주 마침 맑고 쾌청한 날 광화문 곁을 지나갈 일이 있었다.

그런데 마땅히 있어야 할 광화문이 보이지 않았다.

높은 담장도 사라졌다.

덕분에 모습을 드러낸 경복궁의 모습과 그 뒤에 버티고 있는 북악산의 위용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북악의 정기가 경복궁을 통해 수도 서울의 중심으로 흐르고 있는 듯한 착각 속에서 그 자연미와 궁궐의 조화가 인상적이었다. 과연 우리 조상들이 이곳에 도읍을 정할 만한 이유가 있었구나 하는 깨달음이었다.

600년 전 도읍지로 결정될 당시 서울은 작은 고을에 지나지 않았으나 조선왕조 태조가 왕사인 무학대사의 권유를 받아들여 사면이 높고 산세가 수려하며 중앙이 평탄한 이곳을 도읍지로 정했다고 한다. 이곳을 도읍으로 정하면서 태조는 정무를 다루고 국가로서의 위상을 세우기 위해 경복궁을 짓기 시작,태종 5년인 1404년 9월에 마무리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전소돼 폐허로 남아 있다가 조선 말기 고종 때 중건됐다고 한다. 그 후 1927년에는 일제가 조선총독부를 만들면서 광화문을 경복궁 동북 쪽으로 옮겨 짓기도 했고,한국전쟁 때는 폭격으로 광화문이 전소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최근 철거된 광화문은 1968년 건립됐지만 그 위치와 방향이 원래 있었던 자리가 아니었다고 한다.

현재 경복궁과 광화문의 제 모습을 찾기 위한 복원사업이 한창이다. 20년 계획으로 진행돼온 경복궁 복원사업이 마무리되면 고종 당시 궁궐의 40% 정도가 복원된다고 하니,조선왕조 정궁의 위용이 얼마나 대단했던가는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여기서 필자는 조금은 엉뚱한 발상을 해본다. 광화문을 복원할 때 그 높다란 담장공사는 생략할 수 없을까 하는 것이다. 광화문 앞은 많은 사람이 지나다니고 차량 통행도 빈번한 서울의 중심지다. 일부러 궁 안까지 들어가서 경복궁을 관람하는 것도 좋지만,스쳐지나가면서 보는 경복궁과 북악의 모습에 사람들은 더 정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광화문은 수도 서울의 상징이기도 하고 외국인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다. 따라서 새로 조성될 광화문 광장을 찾는 모든 시민과 외국 관광객에게 담장을 개방해 조선조 정궁으로 사용되던 경복궁의 모습과 북악산의 정경을 동시에 바라 볼 수 있도록 배려하면 어떨까.

변화의 시대에 새로운 시각에서 문화재를 들여다본다. 닫혀진 궁궐보다는 '빛이 사방에 퍼지고 교화가 만방에 퍼진다'는 광화문의 본디 뜻 그대로 그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열려진 궁궐의 모습에서 우리 민족의 역사유산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